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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크루즈 미사일에 미 핵탄두 달아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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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호 30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때 미국 카네기 재단의 로버트 케이건은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이론가였다. 103쪽의 얇은 책 낙원과 힘에 대하여에서 ‘강자와 약자의 정의가 다르다’고 간파했다. 말하자면 이렇다.

안성규 칼럼

오늘날 유럽은 미국의 ‘힘 과시 성향’을 혐오하고 대화·협상을 중시한다. 은연중 미국은 악(惡)이자 제국주의, 유럽은 선(善)이자 평화집단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몇 세기 전엔 반대였다. 제국주의 유럽은 힘을 앞세웠고, 약체 미국은 대화ㆍ협상을 말했다. 케이건은 ‘국가관계에서 강자일 때는 힘을, 약자일 때는 협상ㆍ대화를 앞세운다’는 통찰을 보여줬다.

북한은 형편없는 처지에 ‘완전 강국’처럼 군다. 말에 힘이 뻗친다. “남조선 박살” “전면전 불사”를 달고 산다. 통치이념이 ‘선군(先軍)정치’고, 김정일 스스로 국방위원회 위원장이다. 협상과 대화는 곤란할 때만 나온다. 요즘 들어 악쓰기는 더 심해졌다.

케이건 기준으로 한국은 ‘약자’다. 맞아도 대화와 협상을 얘기한다. ‘주던 돈 안 주니 북한이 성질 낼 만하다’는 논리가 진보란 이름으로 횡행한다. 그러나 “네 월급 털어 북한 도울래?”라고 하면 당장 “노”라 할 얌체 진보다. 보수라고 결기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맞다 보니 ‘이젠 가만 안 있겠다’고 하지만 미덥질 않다. 최근 보수 정부 내에 ‘대북정책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논쟁이 있었는데 기조는 ‘대화 우선’이란다.

대화ㆍ협상을 수십 년 해도 성과가 없고, 그렇게 할수록 약자로 보인다는 걸 그렇게 모른다. 끝없는 횡포를 참고 어쩌지 못하는 것은 무능이다. 다행히 요즘 우리 사회는 강자의 지혜로 선회하고 있다. 한국전쟁 50년 만에 남한에 포격으로 선전포고를 한 북한에 우린 강자여야 한다.

그런데 곤혹스럽다. 강자가 되는 수단이 막막하다. 북한이 강자처럼 구는 것은 핵무기 때문이다. 천안함 때 긴가민가했던 북한 관측통들은 연평도 포격 이후 “핵 무기를 계산에 넣은 행동”으로 단언한다. ‘공격해도 남한이 못 대들고 확전은 더 못한다. 확전할라치면 핵무기를 꺼내면 된다’는 계산이란 것이다. 그래서 정보 계통에선 ‘핵 자신감이 있는 한 도발은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를 막을 결정적인 독자 수단이 없다. 우리 재래식 무기가 우위라지만 핵무기엔 안 된다. 다른 대안도 ‘미국 기대기’, 약골의 모습이다. 요즘 거론되는 수단 중 하나가 ‘미군의 든든한 지원’과 ‘미 전술핵무기 도입’인데 둘 다 미국의 선의(善意)에만 의지하는 것들이다. 아무리 동맹이라지만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미국 대통령이 작전계획 5027에 따라 70만 미군을 선뜻 북한 핵무기 앞으로 진격시키고, 필요하다 해도 미국 핵무기 발사 단추를 누르려 들까.

그래서 세 번째 대안, 우리 핵무기가 필요하다. 핵무기는 강하다. 아무리 병력을 늘리고, 복무 기간을 연장하고, 미국 무기를 사들여도 핵무기엔 못 미친다. 핵은 핵으로 맞서야 한다. 두 방법이 있다. 우선 미국 핵탄두를 한국의 크루즈 미사일에 장착하는 것이다. 평시엔 미군이 관리하고 북한이 핵공격을 하면 한국이 발사권을 갖는 것이다.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비확산체제(NPT)도 건드리지 않는다. NPT는 핵제조를 금지하고 있다. 냉전 때 미국은 자국 핵탄두를 독일의 퍼싱 미사일과 결합해 운용했다.

그게 안 통하면 핵무기 개발이다. 그게 현실 모르는 위험하고 무식한 생각이란 비판이 터질 것이다. ‘국제 감시와 제제라는 어마어마한 시련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 한반도비핵화선언(1991년) 위반이다’라고 할 것이다. 왜 모르겠는가. 당장 비밀 공작을 하자는 게 아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그런 시도가 먹히지 않았음을 안다. 그랬다가는 파키스탄, 이란 꼴이 난다.

다른 방식으로 가야 한다. 당당히 공개 무장하는 여론전이다. 국민 모두 필요성을 납득하고 그 과정에서 닥칠 고생도 각오하게 해야 한다. 북한 핵공갈에 진저리 치는 중산층을 대변해 학자와 여론 지도층이 ‘핵무장 필요성’을 공개 거론해야 한다. ‘비핵화 20년의 손실’이란 불편한 진실도 직시해야 한다. 중국에 맡겨봐야 속절없으며, 우리 손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사즉생(死卽生)이라는 역설이 힘을 떨쳐야 남북 틈새에서 ‘말장난’만 하는 중국도 다급해 북한으로 뛸 것이다. 북도 신경 쓸 것이다. 그리고 맥없는 정부에 ‘카드’라도 쥐여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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