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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의 차단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6호 30면

#사람들은 대개 자기 판단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제로 남극의 펭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펭귄들은 매일매일을 ‘바다의 강도’라는 범고래와 목숨을 건 룰렛 게임을 하면서 살아간다. 동물플랑크톤인 크릴 사냥에 나서는 펭귄은 범고래가 수면 아래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직접 물에 들어가 살펴볼 수도 없다. 펭귄 무리 중 몇몇 펭귄이 기다리다 지쳐서 뛰어들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 기다림을 못 이긴 성질 급한 펭귄이 바다에 뛰어드는 그 순간에 나머지 펭귄들은 뛰어들거나 아니면 아무도 뛰어들지 않게 된다. 바다에 피가 번지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모방은 펭귄에게 생존전략이 된다.

#사람들에게도 모방은 삶의 전략이 된다. 마크 뷰캐넌은 『사회적 원자』에서 재미있는 사례를 소개했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부쇼와 미샤르는 1950년부터 2000년까지 50년간 유럽의 출생률이 극적으로 떨어졌음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주목했다. 예컨대 경제적 상황, 여성 취업률, 자녀 교육비와 같은 외부요인만이 출생률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에는 그 변화가 너무 빨랐다는 것을 알아냈다. 많은 사람이 아이를 낳지 않거나 적게 낳겠다고 결정했는데, 독립적인 판단이 아니라 모방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두 물리학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자연스러운 경향은 동료들의 압력을 통해 크게 증폭되고 과장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합계출산율(여성 1인이 가임 기간 중 갖는 자녀 수)의 급격한 추락이 모방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지 궁금하다.

#연주회에서 한 악장이 끝나고 다음 악장을 시작하는 사이에 박수를 치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이를 금지시킨 사람은 푸르트뱅글러다. 그가 36세에 베를린 필 지휘자가 되었을 무렵까지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것은 관례였다고 한다. 아무리 악보를 들여다봐도 악장 사이에 ‘박수 소리’라는 것은 기입되어 있지 않으니 푸르트뱅글러는 철저히 악보의 지시를 따랐다는 입장이다. 한편 연주 시작 전 단원들이 무대에 입장할 즈음에 몇몇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박수를 친다. 그러다가 박수가 잦아들고 뒤늦은 박수가 계속 이어지다가 조용해진다. 이런 현상도 거의 모방 때문에 일어난다. 청중은 다른 사람들이 박수칠 때 박수치고 그만둘 때 함께 그만 둔다. 시간 규모의 차이를 무시하고 여러 음악회에서 녹음된 박수 소리 데이터와 출생률 데이터를 함께 놓고 보면 둘은 동일한 수학적 곡선을 따른다고 한다. 행동을 변화시킨 사람의 비율이 시간이 경과하면서 높아지다가 일정한 시간이 되면 변곡점을 이루고 다시 낮아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 그리고 박수를 치는 일과 아이를 갖는 일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우리가 모방이란 보편적 패턴에 따라 타인의 행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공통적 현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하등동물보다 뛰어난 점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흉내를 잘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잘 따라하는 대상은 대개 다른 사람들이다. 그래서 모방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고 자기 결정을 돕는 힌트를 얻다. 그렇지만 이게 늘 좋은 방법은 아니다. 80년 오늘(12월 12일)은 군부세력의 모방범죄가 일어난 날이다. 예산국회의 폭력상 역시 과거 선례에서의 ‘선택적 모방’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발표된 2010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선 출산율 저하 문제를 해결 과제로 제시했다. 산아제한의 ‘모방’을 차단할 방책과 함께 폭력국회의 모방범죄를 근원적으로 척결할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고등동물은 모방할 것과 모방하지 말 것을 잘 구별한다.



강성남 1992년 서울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딴뒤 대학·국회·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저서로 『부정부패의 사회학』 『행정변동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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