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장난감에 빠진 아이처럼 기술에만 탐닉하면 곤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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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호 28면

②기술이 바꿔놓은 미래
나는 지난 호에서 인류가 이제 더 이상은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물론 의사 결정권자(decision maker)들은 예언 가능한 세상을 원한다. 또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큰돈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부도덕한, 또는 자신도 잘못 알고 있는 많은 자들이 어수룩한 사람들에게 특정한 한 가지의 미래를 팔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짐데이터의 미래학 이야기

대안적인 미래상들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선호하는 미래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어떤 힘들이 세상을 바꾸는지에 대한 관점, 즉 사회 안정과 변화에 대한 엄격한 이론이 필수적이다. 이는 미래에 대해 말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미래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일부 사람은 사회변동이론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영리하게도 특정한 미래 시점에 A란 사건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떠들지만, 그런 미래 예측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어떻게 골라냈고, 왜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지 이론적 배경까지 설명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미래 전문가에게는 먼저, 어떤 사회변동이론을 쓰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만약 “설명하기가 너무 복잡하다”거나 “그건 기업 비밀”이라고 답한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게 낫다. 이론적 근거 없이 경험이나 직관으로만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또 만약 어떤 미래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자주 바꾼다면 의심해볼 만하다. 이들은 종종 의심의 여지없이 A라는 미래가 일어날 것이라고 떠들다가도, 하루아침에 어떤 설명도 없이 B라는 미래를 확신한다며 떠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들은 많다. 언론에서 자주 인용되고 최고의 강연료를 받는 많은 사람이 이상하게도 그들의 이야기를 하루아침에 바꿔버린다. 어느 날은 세상이 생기가 없다고 했다가, 다음 날에는 뜨겁고 붐비고 있다고 말을 바꾼다. 이들은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두 가지의 모순된 주장을 한다. 이야기가 달라졌다면 솔직히 잘못을 시인해야 한다. 이상한 것은 강연료를 돌려주는 것은 고사하고,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처음 말할 때처럼 똑같은 확신과 권위를 바탕으로 고액의 강연료를 챙기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 전문가들에게 얼마나 논리적인 이론을 활용해 논리적인 예측을 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선택할 수 있는 이론들은 많다. 인간의 능력보다 한계를 강조하는 이론, 환경이 인간을 만든다는 이론, 혹은 인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이론, 반대로 인간은 무기력하다고 주장하는 이론도 있다. 나는 기술이 사회와 환경을 변화시키는 주요 요인임을 주장하는 이론을 주목한다. 묘하게도 기술은 사회ㆍ환경적 변화의 과정에 개입하거나, 변화를 더욱 촉진시켰다가도, 나중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세상에서 잊혀지기도 한다. 예컨대 20세기 어떤 기술들은 가파른 인구 증가의 디딤돌이 됐음에도, 인구 증가 그 자체가 사회·환경적 변화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기술이란 ‘인류가 일을 하는 모든 방식’인데, 이 정의는 ‘사람’을 강조하며, ‘무엇을’만이 아닌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지도 않고, 통제할 수 없는 망나니도 아니다. 오히려 인류는 기술을 통해 서로 소통하며 더욱 인간답게 되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되묻고 변형시켰다. 사회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고 적절한 미래를 내다보자면 기술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무엇인지 분석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지난 호에서 언급한 마셜 맥루언의 명언(“우리가 도구를 만들어내지만 그 후엔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가 도구를 만드는 주체이지만, 그 ‘도구’는 우리의 사회 환경을 예기치 못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킨다. 미래학자로서 내가 수행하는 연구는 과거에 기술이 어떻게 인류의 행동을 변화시켰는지, 그 역사적 기록을 찾아내는 것이다. 또 기술의 영향력이 문화와 지역이 다른 곳에선 어떻게 달라지는지, 어떤 새로운 기술이 어느 연구소에서 개발되고 있는지, 그 기술은 앞으로 인류의 행동을 어떻게 바꿔나갈지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기술은 물리적·생물학적·사회적 기술로 나눌 수 있다. 펜·컴퓨터·비행기가 물리적 기술이라면, 음식을 먹고 자손을 낳고 땀을 흘리며 체온을 조절하는 것은 생물학적 기술이다. 가족·학교·직장·자본주의 등 집단과 제도는 사회적 기술이다. 사회 변화와 충돌은 물리적 기술이 생물학적 기술이나 사회적 기술을 위협하거나 대체할 때 전형적으로 발생했다. 예컨대 생명공학(BT)의 발전으로 성적 접촉 없이도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됐고, 첨단 정보기술(IT)이 나오면서 학교나 도서관이 가상공간으로 대체됐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와 오그웨어(org ware)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도 기술이 어떻게 사회를 바꾸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그웨어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생산·유지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구조와 물리적 절차를 말한다. 펜을 예로 들어보자. 글쓰기·문법, 펜을 쥐는 법 등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지 않으면 펜이라는 하드웨어의 의미는 사라진다. 더 나아가 펜은 글쓰기·학교 등을 만들어내는 인류 체제, 즉 오그웨어에 의존하게 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유지하고, 바꾸는 사람의 역할을 빼놓고 사회 변화의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현대인은 지난 수백 년간 서구문명의 확산으로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 개발을 적극 장려하는 세상에서 살게 됐다.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되고 널리 퍼지면서 인류의 진화 속도는 점점 더 가속화하는 중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기술은 인간의 행위와 신념ㆍ제도만 바꿔놓은 게 아니다. 인류가 오랫동안 생존의 기반으로 의존해 왔던 순수한 자연은 대부분 사라지고, 인공적인 환경으로 대체되고 있다. 기술에 탐닉하다 보니,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생존이 불확실한 상태에 놓인 것이다.
인류가 계속 생존하기 위해서는, 진화를 조절해야 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신기한 새 장난감에 푹 빠진 어린아이처럼 기술에만 탐닉하는 것에서 멈춰야 한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인류가 직면한 최대 과제다. 번역=하와이 미래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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