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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다시 서는 고국무대 가슴 뛰네요, 30대 챔프 기대 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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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내년 KLPGA 투어로 복귀하는 베테랑 골퍼 정일미(오른쪽)와 박희정이 3일 서울 중구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나 포즈를 취했다. 정일미는 “후배들과 당당하게 샷대결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박희정은 “엄마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상선 기자]


내년도 KLPGA투어에선 반가운 얼굴을 만나볼 수 있게 됐습니다. 미국 무대에서 활동하던 정일미(38)와 이정연(31)·박희정(30)·송아리(24)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지난달 25일 끝난 KLPGA 정규 투어 시드전을 당당히 통과하면서 내년도 KLPGA투어의 모든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따냈습니다. 이번 주 golf&은 쉽지 않은 U턴 결정을 내린 ‘맏언니’ 정일미와 ‘주부 골퍼’ 박희정을 만나 국내 투어에 나서게 된 심경을 들어봤습니다.

“KLPGA투어에서 2003년 이후론 30대 챔피언이 단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30대의 자존심을 되살려 달라는 격려를 많이 많았어요.” (정일미)

“저도 마찬가지예요. 언니와 함께 30대의 힘을 보여주고 싶어요.”(박희정)

정일미(左), 박희정(右)

지난 3일 서울 중구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정일미와 박희정을 만났다. 서로 다른 이유로 국내 무대로의 U턴을 결정했지만 목표와 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엔 기대와 설렘이 함께 비쳤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LPGA투어 출신 선배답게 ‘어린 후배들의 귀감이 돼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LPGA투어에서 활약하던 스타들이 국내 무대로 속속 복귀함에 따라 내년도 KLPGA투어에는 새로운 세력 판도가 형성될 전망이다. 국내 투어는 그동안 20대 초반 젊은 선수들이 주도했는데 미국에서 경험을 많이 쌓은 30대 선수들이 돌아오면 신구 대결 구도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일미·이정연·박희정 등이 복귀하면서 K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30대 선수들은 올해 2명에서 내년엔 5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정일미와 박희정은 “30대 챔피언의 명맥을 잇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일미는 31세였던 2003년 김영주골프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서 KLPGA투어 마지막 30대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당시 자신이 세웠던 기록이 여태껏 깨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박희정은 “언니가 보유하고 있는 30대 우승 기록을 내년엔 내가 깨고 말겠다”고 말했다.

“올 시즌을 마친 뒤 생각을 많이 했어요. 17개월 된 아들 (장)지웅이를 키우면서 투어 생활을 접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일미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를 듣게 됐어요. ‘그래, 그럼 나도 KLPGA투어로 복귀해서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자’ 이렇게 결심했지요. 일미 언니의 용기 있는 결정이 저에게도 힘을 준 셈이에요.”

국내파 정일미가 32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미국행을 택했다면 호주 유학파 박희정은 20세 때 LPGA투어에 입성했다. 두 선수 모두 엘리트코스를 거친 건 공통점이다. 국가대표 출신 정일미는 KLPGA투어에서 통산 8승을 했다. 호주 국가대표를 지냈던 박희정은 KLPGA투어 1승과 LPGA투어 2승 등 통산 3승을 기록한 톱플레이어다.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정일미는 ‘스마일퀸’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박희정은 호주 주니어무대에서 42승을 거두며 ‘코알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일미는 “운명처럼 미국에 갔다가 운명처럼 돌아왔다”고 말했다. 32세의 나이에 LPGA투어에 도전하려니 주변에서 모두 말렸지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정일미는 “세계 최고의 무대인 LPGA투어에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미국행을 결정했다. 지난 7년 동안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둔 건 아니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7년 동안 외로움과 싸움을 벌였지만 모든 일에 감사하고,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5년 이상 어린 후배들과 함께 KLPGA투어 시드선발전을 치르면서 비로소 낯설고 긴 여행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어요. 한국이 좋긴 좋네요.” 정일미의 얼굴에 웃음꽃이 번졌다.

박희정은 2006년 결혼하면서 ‘주부 골퍼’가 됐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요즘은 프로골퍼인 동시에 아내이자 엄마·며느리로서 1인4역을 해내고 있다. 임신과 출산으로 지난 5월까지 2년간 클럽을 아예 내려놓았던 박희정은 올해 LPGA투어 10년 활동 기간을 모두 채워 ‘영구회원 자격’을 얻었다.

박희정은 “올해 몸을 추슬러 LPGA투어의 일부 대회에 출전한 것은 바로 영구회원 자격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육아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성적이 신통치 않은 것도 투어 생활에 회의를 들게 했다. 박희정은 “국내 무대로의 복귀 결정은 백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엄마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남들은 은퇴를 이야기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결혼한 뒤 주부와 프로골퍼의 길을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불꽃을 태운 뒤 명예롭게 물러나고 싶어요.”

박희정은 지난달 시드전을 치르는 기분이 1999년 미국 LPGA Q스쿨 마지막 라운드 때와 비슷했다고 말했다.

“엄마가 되더니 이제 좀 철이 들었나 봐요. KLPGA투어가 내 인생의 마지막 무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 반드시 해내야겠다는 절실한 생각이 들더군요.”

정일미도 이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비록 미국 무대에선 우승하지 못했지만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봤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동안의 경험과 기술을 살려 고국에서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지요.”

정일미는 꿈을 꾼 에피소드를 통해 그동안 얼마나 한국에 오고 싶었는지를 이야기했다.

“KLPGA투어 시드전을 20일 정도 앞두고 꿈을 꿨어요. 생애 처음으로 LPGA투어에서 우승을 하는 꿈이었지요.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밀려들고 축하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그 꿈을 꾸면서 걱정이 됐어요. ‘나는 한국으로 가야 하는데 2년간 더 미국 투어에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더라고요.”

정일미는 “그 꿈으로 미국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접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정일미는 “실력이 뛰어난 어린 후배들과의 경쟁이 다소 버겁게 느껴지지만 그들이 꿈꾸는 미국 무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창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일미는 “(박)희정은 머리가 좋고 이해심이 많다. 집중력도 뛰어나 내년 시즌이 기대된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박희정은 “일미 언니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선수다. 항상 노력하는 모습이 후배들의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두 선수는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며 내년 KLPGA투어에서 선전을 다짐했다.

글=최창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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