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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봉 맞아 병원 실려가고 본관 유리창 박살나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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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만 참석한 채 국토해양위원회 회의를 진행하자 민주당 의원과 보좌진이 몰려와 한나라당 보좌진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형수 기자]


국회 본청 중앙(로텐더)홀에서 500여 일 만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지난해 7월 당시 미디어 법안을 둘러싼 갈등이었다면 7일은 새해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충돌이었다.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두고 여야가 격돌해 몸싸움이 벌어진 건 물론 사무실 집기까지 날아다녔다. 본회의장 입구의 강화유리문이 부서지기도 했다. 여의도에 국회 의사당이 들어선 이래 본회의장 출입구의 강화유리문이 깨진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국토해양위에선 여야 간 육탄전이 벌어졌다. 4대 강 사업과 관련한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안(친수법안)’ 처리 때문이다. 심야엔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국회의장석을 점거하고 한나라당 의원들도 본회의장에 자리잡아 ‘여야의 본회의장 동시 점거’ 사태까지 벌어졌다.

7일 국회부의장실 인근 유리문이 여야 보좌진의 몸싸움으로 깨져 있다. [김형수 기자]

 ◆동시다발 작전 벌인 한나라당=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저녁 무렵 오후 9시 의총을 소집했다. “보좌진도 대동하라”는 지시도 함께였다. 그러자 오후 8시쯤부터 민주당 인사들이 본청에 모여들었다. 그런 다음 본회의장과 예결위회의장으로 통하는 문 앞에 연좌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4대 강 예산 전액 삭감 민생예산 확보’란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순간 수백 명이 농성하는 모양새가 됐다.

 그러는 사이 한나라당은 동시다발 작전을 구사했다. 국토해양위에선 한나라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차지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친수법 상정을 막겠다며 2, 6일 위원장석을 점거했다가 푼 틈을 파고든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과 보좌진은 회의장 밖에서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측과 한나라당 보좌진이 거칠게 몸싸움을 벌였다. 해머만 등장하지 않았지 2008년 12월 외통위 사태와 유사한 풍경이었다. 그러는 사이 오후 9시30분쯤 한나라당 의원 12명이 출석한 가운데 국토해양위가 열려 친수법 등 92개 법안을 상정했다. 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뒤늦게 회의장에 들어선 뒤 격분해 던진 의사봉에 한나라당 현기환 의원이 머리를 맞아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비슷한 시간대에 한나라당 정진섭·강석호·손범규·성윤환 의원은 국회의장실과 부의장실로 급파됐다. 민주당 측에 의해 박희태 의장과 정의화 부의장이 ‘감금’되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경위들도 차단막을 쳤다. 이후 민주당 소속인 홍재형 부의장을 앞세운 가운데 민주당 인사들이 밀고 들어가다 유리가 깨지는 일이 벌어졌다.

 기획재정위에서도 예산 부수 법안 처리가 이뤄졌다. 민주당 의원들이 “지도부와 상의할 테니 시간을 달라”고 ‘지연전술’을 폈으나 대세를 뒤집진 못했다.

 ◆본회의장 동시 점거=오후 10시40분쯤엔 민주당 측이 본회의장에 진입하기 위해 입구의 강화유리문을 부쉈다. 경위들이 사무실 집기를 미리 쌓아두었으나 민주당 보좌진이 로텐더홀 중앙 계단 아래로 집어 던졌다. 이미 일부 한나라당 의원이 본회의장에 들어가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였다.

오후 11시10분쯤엔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진입에 ‘성공’했다. 이춘석 의원은 “우리 의원 40여 명이 의장석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가 어려워졌다는 판단 때문인지 민주당 쪽 분위기가 밝아졌다. 이날 선수는 한나라당이 쳤다. 7일 오전 의원들에게 비상대기령을 내렸다. 이날 저녁부터 정기국회가 끝나는 9일 자정까지 국회 부근에 대기해야 한다는 지시였다. 김무성 원내대표가 원내부대표를 통해 돌린 구두 사발통문이었다.

 ◆8일 자정 이후 언제든 예산 처리 가능=한나라당 소속 이주영 국회 예결위원장은 새해 예산안의 심사기일을 지정했다. 7일 오후 11시다. 8일 0시 이후엔 언제든 전체회의를 열 수 있도록 개의시간도 지정했다. 예결위·본회의 처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매년 법정기한을 어기는 나쁜 관행을 깨겠다”고 공언한 걸 실행에 옮긴 셈이다. 이는 예산안 등을 사실상 강행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에선 의원직이 없는 손학규 대표까지 본회의장으로 이동해 농성에 가담했다. 손 대표는 심야의총에서 “(여당이 예산안 등을 처리하려면) 우리를 밟고 넘어가라”며 투쟁을 독려했다.

글=고정애·선승혜·허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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