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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자원봉사 인증보상제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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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경동
한국자원봉사포럼 회장·서울대 명예교수

우리나라 자원봉사 운동은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활성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도움을 못줄망정 자발적 시민운동의 근본정신과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해 자원봉사계가 자원봉사의 관변화(官邊化)를 부를 수 있다며 반대한 중앙자원봉사센터 설치를 강행한 데 이어 올해는 국회에서까지 의원입법으로 자원봉사의 자발적 정신과 자율성을 뿌리부터 훼손할 수 있는 법률안(자원봉사활동기본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개정안은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해 봉사자의 실적을 인증하고 그에 대한 일정한 보상을 제공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내용이다. 이는 자원봉사의 철학을 무시하는 처사일 뿐 아니라 자칫하면 정부와 정치인이 악용할 소지가 충분하다. 본래 자원봉사의 깊은 뜻은 거기에 동참하는 성숙한 시민의 도덕적 헌신과 사회적 책무의 규범을 이행하는 데 있다. 그 결과로 경험하는 인간의 내면적 만족감과 삶의 심오한 의미 발견은 물론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행복한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이미 소중하다.

 그러므로 자원봉사 활동에 대한 보상은 오히려 정신적·사회적으로 칭찬해 주고 사회운동의 챔피언으로, 역사의 영웅으로 추앙해 주는 모습이 훨씬 더 의미 있고 값진 것이다. 거기에다 물질적 보상을 내세우는 것은 자원봉사를 모독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경제적 보상을 제공한다 해도 그것은 객관적으로 타당한 반대급부에 미치지도 못한다는 점 또한 염두에 둬야 할 일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정식으로 고용해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실질적이다.

 더구나 인증과 보상의 구체적 기준과 방법의 책정과 시행에도 상당한 문제점이 수반된다. 우선 인증 기준을 거의 기계적으로 봉사시간이라는 요소에 의존하자는 것인데, 이런 일차원적 평가는 정말 문제가 많다. 정부가 지난해 작성해 배부한 인증 기준을 보면 거기에 어떤 철학이나 정당성을 합리화할 수 있는 표준 같은 것이 불분명하다. 봉사활동은 물리적 시간 자체도 중요한 자원으로 인정할 만하지만, 더 무게를 둬야 할 것은 참여와 활동의 질적인 측면과 진정성이다.

 그만큼 봉사활동의 인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정교한 측정 기준이 설정되고, 활동을 실지로 관찰해 기록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그러자면 그만한 인적 자원을 투입해야 하고 그 인력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무엇보다 이 업무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위임함으로써 관변화와 정치화를 부추기는 결과밖에 기대할 것이 없다. 그만큼 우리의 관료주의와 정치 수준은 신뢰를 잃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정부 당국자나 국회의원들은 그런 부정적 요소를 감안하고도 굳이 개정안을 관철해야 하는지 성찰을 거듭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 주기를 당부한다. 모두가 잘 해보자고 하는 충정인 줄은 알지만 접근방법에서 차질이 있다면 시정하는 것이 도리라 믿기 때문이다.

김경동 한국자원봉사포럼 회장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