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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당할 각오하고 밝힌 탈옥수 신창원의 옥중 최후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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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원이가 섹스를 하는데 체위라든가 다른 신체적 특징은 없었나요?”
“오럴 섹스를 했어요.”
“해달라는 편인가요, 해줬나요?”
“자기가 원하기도 하고, 또 해주기도 했어요.”
“또 다른 특징은요?”
“애무가 길었어요.”
“성기에 특징은 없었습니까?”
“거기에 다마가 두 개….”
“그러니까 성기에 구슬이 두 개 달렸더란 말이죠?”
“네….”
형사가 신창원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이봐, 창원이, 맞아? 어디 박았어?”
“네, 아랫부분에 두 개 있습니다.”

신창원이 지난 98년 7월에 청주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서 부녀자를 강간하고 현금 8만원을 빼앗아갔다는 내용을 언론을 통해 발표한 뒤에 경찰은 대질심문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대화는 경찰과 피해자가 나눈 것이 아니라, 경찰측 증인으로 나선 신창원의 옛 동거녀가 대답하는 것이다. 칸막이 뒤에서는 피해자라는 여자가 대화 내용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대질심문 자리에 나도 신창원의 변호인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경찰측 증인으로 나선 신창원의 옛 동거녀에 대한 조사가 피해자라는 여인 앞에서 피해자보다도 먼저 이뤄졌다는 사실부터가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조사는 옛 동거녀가 그의 신체적 특징 및 성행위시 특이사항을 증언하고 곁에서 듣고 있던 피해자에게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피해자와 신창원의 직접적인 대면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이래봬도 성욕이 엄청 강한 놈인데 강간을 하려면 한 번만 했겠어요? 솔직히 밤중에 도둑질하러 들어가보면 별의별 장면들을 다 보게 되는데 내가 강간을 하고 싶었으면 왜 못했겠냐구요?”

신창원의 항변은 그대로 묵살된 채 조사는 피해 여성의 진술 한마디로 끝나버렸다.

“글쎄요,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성기에 구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마도 조서에는 ‘네, 성기에 구슬이 있었습니다’라고 기록되었을 터였다. 수사팀이 나가고 다시 신창원과 마주 앉았다. 그는 벌써부터 자신에 대한 갈등으로 흔들리는 내 마음을 눈치챈 것 같았다.

“변호사님, 정말 강간은 하지 않았어요. 믿어주세요. 구슬보다 더한 제 신체적 특징이 있어요. 그런데 피해자라는 그 여자는 전혀 말도 못해요.”
“어디 한번 벗어봐요.”

신창원은 두 말 없이 일어서서 옷을 벗었다. 성기 주변에 누가 봐도 금방 눈에 띄는 특징이 있었다. 피해자라는 여자가 왜 그건 얘기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나중에 경찰이 발표한 내용을 신문 보도를 통해 보았다. 피해자와 증인이 신창원의 독특한 신체적 구조를 알아맞혔기 때문에 강간 수사의 개가를 올렸다는 내용이었다.

신창원이 여자들에게 인기 있었던 이유

신창원은 2년 6개월여의 도피생활 중 산속에 토굴을 파고 은신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주로 여자들의 보호막에 숨어 살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많은 여자들과 인연을 맺었으며 그 중 여섯 명의 여자들과는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중 세 여자는 그가 도피생활을 계속하고 있을 때 이미 경찰에 구속되었고 검거 후 두 명의 동거녀가 범인은닉과 절도 공범혐의로 구속됐다.

어떻게 보면 신창원과 그 ‘여자들’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의 관계였다. 신창원은 여자들에게 돈과 사랑을 바쳤고, 그 여자들은 신창원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신창원이 돈으로 여자들을 유혹한 뒤 자신의 도피생활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는 등, 말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세간의 억측이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신창원이 그 여자들을 이용했건 어쨌건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를 끝까지 숨겨주려고 애썼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가 과연 돈뿐 이었을까.

그러기에는 몇 가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데 그 첫번째가 신창원 에게는 5천만원이라는 거액의 현상금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 분의 동거녀들이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신창원의 남성미가 여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던 것은 아닐까? 일례로 그가 도피생활 도중 처음으로 경찰의 수사망에 걸려든 것은 첫번째 동거녀의 제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신창원은 다른 여자를 만나 살림을 차리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질투심에 눈이 먼 동거녀가 경찰에 협력을 자청한 것.

“내가 그때 생각이 짧았어요. 미숙이가 좋은 여자 생기면 데리고 오라고 해서 얼굴이나 보여주려고 했던 건데 그렇게 화를 낼 줄은 몰랐어요.”

손미숙(가명)
은 신창원의 첫번째 동거녀 이름이었다. 손미숙은 신창원이 부산교도소 탈주 후 열흘 만에 만난 티켓다방 여종업원으로 신창원과는 가장 인연이 깊은 여자였다. 그녀는 평택의 한 빌라에서 신창원과 같이 살던 중 인근 세차장 주인의 제보로 경찰이 들이닥치자 좋은 여자 만나면 한번 데리고 오라는 말과 함께 그를 내보냈다.

신창원은 이때 그동안 절도행각으로 모은 돈을 모두 그녀에게 맡겨놓고 있었는데 도주에 필요한 기름값 한푼 챙기지 못하고 빈손으로 쫓겨나야 했다. 그럼에도 신창원은 그녀에 대해서 원망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두번째 동거녀와 살고 있던 집에까지 찾아가 “당신과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는 내용의 메모를 차에 두고 가자 그녀를 찾아갔다가 경찰의 포위망에 갇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손미숙은 특히 신창원의 ‘택시비 사건’에서도 속칭 배달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만큼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여자였다. 택시비 사건의 요지는 신창원이 부산교도소를 탈출한 뒤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왔는데 훗날 그 요금을 온라인으로 보내주었느냐 안 보냈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랑에는 약하고 위기에는 강한 남자

신창원은 자신의 일기를 통해서 ‘고마운 택시기사 아저씨’ 운운하며 그가 적어준 계좌번호로 택시비를 송금했다고 썼는데, 정작 그 택시기사는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상반된 주장은 결국 신창원의 이중성과 교활함을 거론할 때마다 화제가 되었는데, 내가 신창원을 통해서 들은 바로는 손미숙에게 분명히 택시기사의 온라인 입금계좌번호를 가르쳐주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신창원은 송금이 되었으리라고 믿었던 것.

그는 변호사인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정에서 형을 가볍게 하기 위해 애쓰지도 말고,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진 범죄혐의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에서 원하는 대로 다 인정해버리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어쩌면 그는 모든 걸 포기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삶도, 자유도 그리고 죽음까지도.

그런 그가 유일하게 집착을 드러내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탈옥수 신창원 자신의 도피생활 중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여자들’의 안전이었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내 여자들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뭐든 다 불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들이 그러겠다고 약속하길래 시키는 대로 했구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자신의 검거에 이어 동거녀 둘이 구속된 점에 대해서 그는 몹시 분개하고 있었다. 신창원은 사랑에는 약하고 위기에는 강한 남자였다.

그는 도피생활의 와중에서 다소 무모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행동으로 여러 번 위험을 자초하기도 했는데, 그 모든 게 자신의 동거녀들 때문이었다. 첫번째 동거녀인 손미숙에 대한 신창원의 집착은 한마디로 미련스럽다고까지 할 정도였다.

그는 손미숙의 제보로 경찰이 자신의 은신처를 덮치는 바람에 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도 다시 손미숙을 만나러 충남 천안시 외곽에 있는 태화산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경찰과 혈투가 벌어져 팔뼈가 다시 세 군데나 부러지고 머리는 일곱 군데나 찢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완전 무방비상태에서 손미숙의 차에 숨어 있던 경찰의 공격을 받고 거의 초주검이 되다시피 했는데도 구사일생으로 도망친 그가 살려 달라고 애원했을 때 손미숙은 팔짱을 낀 채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신창원, 그는 알려진대로 교활한 위선자인가

신창원의 입장에서 보자면 엄청난 배신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껏 자신의 도피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냐는 나의 물음에 주저없이 손미숙과의 동거시절 얘기를 꺼냈다. 남자의 정이란 게 그렇게 맹목적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신창원이란 인물을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렇듯 여자 앞에선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나약한 구석까지 내비치는 신창원이었지만 일단 극한상황이 닥치면 믿기지 않을 만큼 강인한 면모를 보여주곤 했다. 그는 한겨울의 강추위 속에서 거의 알몸으로 들판의 볏짚더미에 몸을 숨긴 채 일주일 동안 논바닥에 쌓인 눈을 집어먹으며 숨어살기도 했고, 어느 땐 산속에 토굴을 파고 들어가 며칠씩 시체처럼 누워 있기도 했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는 중상을 입은 몸으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그런 식으로 숨어산다는 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행동이었다.

신창원은 이런 극한상황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를 자신이 교도소에서 독학으로 배운 단전호흡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소년원에 있을 때부터 권투를 배웠고 단전호흡까지 익혔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1백m를 12초에 달릴 수 있는 스피드와 눈앞에서 권총을 겨누는 경찰의 팔목을 비틀어 총을 빼앗을 만큼 대담한 배짱, 거기에 들판의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까지 보태졌기에 2년 6개월에 걸친 신창원의 도주 신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신창원이 도피생활의 와중에 훔친 돈으로 자선사업가 행세를 하며 교활한 이중성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신창원은 두번째 동거녀인 강순희와 함께 살면서 ‘요한의 집’이라는 장애아복지시설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는 이때 자신이 훔친 돈이긴 했지만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게 너무나 기뻤다고 말하며 “할 수 있으면 그 아이들 하나하나를 씻기고 잠시나마 아버지 노릇을 해주고 싶었어요”라고 덧붙였다.

적어도 이 말은 신창원의 진심이었으리라. 그는 자신이 가난하고 정에 굶주린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보면 무조건 돕고 싶었다고 했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이 집을 나와 방황하는 것을 보면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팠다는 것이다.

“열몇 살밖에 안된 여자애들이 술집 같은 데서 일하는 걸 보면 너무나 안쓰러웠어요. 그런 애들 대부분이 돈 때문에 집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애들이거든요.”

경찰도 꽁무니 뺀 신창원의 배짱은 어느 정도였나

신창원은 그런 아이들에게 빚을 갚아주기도 하고 천안의 어느 빌라 단지에 들어가 물건을 훔쳐나오던 초보도둑에게는 자신이 갖고 있던 돈을 쥐여주며 다시는 도둑질 같은 걸 하지 말라고 훈계하기도 했다.

그것이 과연 신창원의 교활한 이중성 때문이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실제로 그가 훔쳤다고 주장하는 돈의 액수는 어마어마한데 정작 자신이 쓴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분명 누군가 그 돈을 쓴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마도 그 돈은 신창원을 도와준 사람들의 몫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신창원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의 몫이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신창원에게는 그렇게 많은 돈을 쓸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다.

신창원은 도피생활의 근거지를 옮길 때마다 그 지역 경찰서를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그가 새로운 은신처를 마련하기 전에 반드시 하는 일은 일단 그곳 파출소나 경찰서로 들어가 상황판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만약 상황판에 자신의 행적이 노출되어 있지 않으면 그 지역이 안전하다는 증거였다.

마치 등잔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경찰은 신창원이 버젓이 그 안을 드나들거나 심지어는 경찰서 문 밖에 훔친 차를 주차시켜놓고 잠을 자는데도 설마하니 신창원이 자신들의 코앞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신창원이 첫번째 동거녀 손미숙의 오빠 문제로 경찰서를 드나들며 직접 형사들과 면담을 하고 검찰청에까지 출입했는데도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신창원이 사례비조로 건네준 뇌물을 챙겼던 일이 들통나자 수사과정에서 액수를 줄여달라는 부탁까지 했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신창원이 전직 대통령 암살 계획을 품고 무기까지 탈취하러 들어간 두 곳의 파출소에서는 더더욱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밤늦은 시각 파출소에 신창원이 들어와 쇠파이프를 들고 왔다갔다하는데도 경찰관이라는 사람들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고, 이를 본 신창원이 오히려 ‘저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나 싶어서 그냥 나왔다’고 할 정도로 측은하고 나약한 일면을 내비쳤던 것이다.

청담동 S빌라 집주인에게 절도금액 5억을 깎아준 도둑

청담동 S빌라는 신창원이 10억을 털러 갔다가 2억5천만원만 받고 나왔다고 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신창원은 이 집에 복면을 하고 들어가 주인부부를 위협한 뒤 10억을 요구했으나 주인남자가 고향사람 운운하며 돈을 자꾸 깎는 바람에 결국 3억원에 합의(?)
를 보고 그 집 식구들과 같이 잠까지 자고 나왔다고 한다.

신창원의 말에 의하면 처음엔 무슨 살인강도라도 들어온 줄 알고 벌벌 떨던 주인부부는 상대가 신창원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오히려 안도하는 기색을 내비치며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주인남자가 ‘이봐요, 신형. 당신 고향이 김제 아니오? 내 고향은 전주입니다’ 하고 호의적으로 나오자 이번에는 그 집 안주인이 ‘신창원씨라니까 그래도 안심이 되네요. 당신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면서요?’라고 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바람에 마음이 약해진 신창원은 강탈해가려던 돈의 액수도 그들의 요구대로 5억원쯤 깎아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꾀가 난 주인남자가 또 2억을 깎는 바람에 짜증이 났었다고 한다. 주인남자는 신창원이 정색을 하고 5억 이하는 안 된다고 하자 금세 꼬리를 바짝 내렸으나 이튿날 은행에서 거액의 현금을 갑자기 준비하지 못하는 바람에 2억5천만원만 받고 그 집을 나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창원의 존재에도 아랑곳없이 아침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식사준비를 하는 가정부에게 ‘이 사람 누군지 알아? 강도야. 탈주범 신창원’이라며 소개까지 할 정도로 신창원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습이었다고 한다.

“청담동 그 아줌마한텐 정말 미안해요. 잡히더라도 그 집 들어갔다는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경찰에서 여자애들을 불구속으로 해준다고 해서….”

신창원은 자신의 진술로 인해 그들에게 피해가 갈 것을 염려한 탓인지 이 대목에서 몹시 심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그 청담동 아줌마가 자신에 대해서 매우 호의적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두려움에서 비롯된 겁먹은 친절과 동정을 구별 못할 만큼 신창원이라는 인물은 철저하게 정에 굶주려 있었다.

이른바 전직 대통령 암살 계획을 골자로 한 신창원의 ‘전쟁’ 자금 마련을 위한 강도행각 과정에서 그가 들여다본 부자들의 세계는 한마디로 별천지였다. 집안에 휴지처럼 굴러다니던 수십억대의 무기명채권과 당좌수표, 한집에 열 벌씩이나 되는 안주인의 수천만원대 밍크코트 듣도 보도 못했던 보석류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어느 집에서는 마침 집안에 현금이 ‘1천만원밖에’ 없다면서 미안해 하기도 했고, 논현동의 어느 부잣집은 신창원이 약도까지 그려주며 강도사실을 자백했는데도 검사가 그 집을 못 찾는 바람에 범죄사실을 인정받지 못했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강도는 있는데 강도당한 사람은 없는 진풍경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당당한 건 오히려 신창원이었다. 그는 자신이 한낱 범죄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데도 일부에선 마치 의적처럼 표현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다소 허矢뽀?심경을 드러내곤 했다.

“범죄자가 의적이 될 수는 없어요. 도둑은 도둑일 뿐이지요. 훔친 돈을 어려운 사람에게 줬지만 남을 도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더라도 자기가 땀흘려 번 것으로 선행을 베풀었어야죠.”

“그래도 세상사람들 중에는 부잣집만 털었다고 좋게 평하는 사람도 있는데….”

“부잣집 털었다고 좋아하는 건 못 가진 사람들의 분풀이에 불과하고 범죄를 부추기는 행동입니다. 잘사는 사람 중에도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번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비난받을 이유는 없죠. 저는 분명히 나쁜 놈입니다. 부자가 없었더라면 가난한 사람을 털었을 테니까요.”

탈주범 신창원은 이미 스스로 단죄하고 있었다. 이제 얼마 후면 그에 대한 법의 준엄한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 그는 차라리 사형이 선고되길 바란다고 했다. 못 배우고 범죄로 얼룩진 자신의 인생을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고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듯 깨끗이 지우고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여성중앙21(http://woman.joongang.co.kr/) 199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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