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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야스쿠니 신사에 조선시대 갑옷·투구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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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전시된 조선시대 군사유물. ‘敵國降伏(적국항복)’이란 글씨 옆에 갑옷과 투구 등이 전시됐다. 투구의 이마가리개엔 ‘元帥(원수)’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A급 전범이 합사(合祀)된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조선시대 장군이 사용한 갑옷과 투구가 봉납된 사실이 확인됐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는 야스쿠니 신사 내 유물전시관 유슈칸(遊就館)에서 열리고 있는 ‘가미카제(神風)’ 특별전에 투구와 갑옷, 실전용 활 등 조선 군사유물이 전시됐다고 3일 밝혔다. 환수위 사무처장 혜문 스님은 “야스쿠니 신사는 ‘1274년 원나라 군사와 고려군의 합동 공격을 막아낸 가미카제’라는 의미로 유물을 전시하면서 당시 일왕이 썼다는 ‘敵國降伏(적국항복)’이란 글씨 바로 옆에 조선시대 군복과 갑옷 등을 전시해 놨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옻칠이 된 실전용 활. [연합뉴스]

 유슈칸 측은 갑옷과 투구가 이소바야시 신조(磯林眞三)의 명의로 ‘메이지 18년’(1885년) 신사에 기증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소바야시 신조는 1884년 갑신정변 당시 조선 민중에게 맞아 죽은 일본 군인이다. 투구에는 ‘元帥(원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금색의 용과 봉황 문양 조각이 붙어 있다. 갑옷은 천 안쪽에 가죽 미늘(조각)을 대고 두정(頭釘·머리모양 쇠못)으로 고정한 붉은색의 두정갑이다. 국내 육군박물관에도 비슷한 양식의 이봉상(1676~1728·이순신 장군의 5대손) 원수 갑옷과 투구가 소장돼 있으나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

 육군박물관 강신엽 부관장은 “원수는 평시에 쓰지 않는 용어로 왜란이나 내란 등이 발발했을 때 임시로 그 사건의 해결을 책임진 통수권자를 지칭한다”며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병마절도사급, 즉 지역사령관 정도는 돼야 썼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부관장은 “이번 유물은 이봉상 갑옷과 비슷한 조선후기 유물로 보이며, 원형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조선시대 군사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일제가 조선 민중의 의병운동에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총·칼·창·방패 등 무기류를 압수해 폐기했기 때문이다. 국내에 ‘원수’란 글씨가 적힌 투구는 5~6점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전시된 활도 주목된다. 옻칠로 추정되는 검은 칠이 돼 있고 실로 여러 번 감은 흔적이 있다. 조선의 실전용 활은 연습용과는 달리 실과 옻이 추가 재료로 들어간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활은 연습용이거나 수노(手弩)라는 특수한 형태뿐이라 실전용 활이 어떻게 제작됐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군사편찬연구소 김병륜 객원연구원은 “유슈칸은 옛 무기류를 보관하던 기관으로 고려 투구, 조선 갑옷, 총 등 우리나라 유물도 상당수 있다고 알려졌으나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다”며 “이번에 전시된 유물은 우리 유물이 온전히 남아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환수위는 “한국에도 없는 귀중한 문화재가 승전 기념물처럼 전시되고 있는 것은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 좋지 않을 듯싶다”며 “일본이 북관대첩비를 인도했던 것처럼 양국의 우호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검토해 달라”는 서한을 야스쿠니 신사 측에 보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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