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총괄’ 제임스 진스 “로봇 같은 승무원은 필요 없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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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취항한 항공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외국 항공사는 홍콩의 캐세이 퍼시픽이다. 한국에 취항한 지 50년이 됐다. 이 회사는 기내에서 승객에게 서비스하는 승무원의 나이도 국내 항공사에 비해 훨씬 많다. 그런데도 이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서비스가 좋은 항공사로 꼽힌다. 지난해 영국의 항공전문평가기관인 스카이트랙스가 선정한 ‘올해의 항공사’에 오르는 등 그동안 받은 상이 셀 수 없을 정도다. 이유는 무엇일까. 비결은 바로 갓 지은 쌀밥을 즉석에서 제공하거나 휴대전화로 항공권을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한발 앞선 서비스와 마케팅에 있다. 최근 한국을 찾은 제임스 진스(42) 캐세이 퍼시픽 마케팅 총괄 담당을 만나 그 노하우를 들었다.

글=김창규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 항공사인데.

“1960년 미국 노스웨스트항공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 첫 취항했다. 올 초 노스웨스트항공이 델타항공에 통합됨에 따라 한국에 취항한 가장 오래된 외국 항공사가 됐다. 1964년엔 일주일에 10번 한국에 취항했지만 지금은 42회나 취항할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많이 성장했다.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도 한국을 유지한 게 큰 의미가 있었다.”

● 한국 시장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은 캐세이 퍼시픽의 10대 시장 가운데 하나다. 서울과 홍콩, 두 지역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도 계속 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성이 있는데 그건 바로 엄마와 딸의 여행(모녀 여행)이 많다는 거다. 엄마와 딸이 함께 홍콩에 가서 쇼핑하고 관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 한국에서 모녀 여행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분석하고 있다.”

● 2006년 ‘누드 항공기’라고 외관을 칠하지 않은 항공기를 도입하는 등 독특한 마케팅을 했는데.

 “아마 ‘Silver Bullet’(외관에 칠이 돼 있지 않아 은으로 만든 총알처럼 보인다는 뜻에서 이렇게 부른다)을 말하는 것 같다. 항공유 비용 절감을 위해 도입했다. 페인트 칠하지 않고 로고만 한 개 달았다. 동체의 페인트를 제거하니 항공기 무게가 200㎏이나 가벼워졌다. 연간 280만 홍콩달러(약 3억7000여만원) 규모의 유류 비용을 줄였다. 그런데 당초 의도와 달리 유지 관리가 어려웠다. 외관 세척 등 관리하기에는 색칠한 게 더 편리했다. 그래서 요즘엔 색깔을 다시 칠하고 있다.”

● 20대가 주류인 한국 항공사와 달리 40대 승무원도 많다. 승무원의 정년은 55세인데.

 “승무원은 여성과 남성 비율이 85%대 15% 정도다. 현재 홍콩·한국을 비롯한 11개국에서 승무원을 뽑고 있다. 뽑는 기준은 그 사람의 능력이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서비스, 자신이 받고 싶은 서비스를 고객에 제공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로봇 같은 승무원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승무원을 원한다.”(이 회사는 올해 승무원 경력이 없는 34살의 한국인을 승무원으로 뽑을 정도로 나이 등에 큰 제한을 두지 않는다.)

●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항공사의 마케팅 전략도 바뀔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생각은.

 “요즘엔 고객이 단순히 상품을 소비만 하려는 게 아니라 기업과의 대화에 끼려고 한다. 고객이 커뮤니케이션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고객과 접촉하는 적절한 채널이 필요하다. 온라인 채널뿐만 아니라 모바일도 정말 중요하다. 이를 반영해 지난해 블랙베리·아이폰 등 모든 스마트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지난여름에만 고객 10만 명이 내려받을 정도로 인기다. 고객이 이 애플리케이션으로 비행기가 언제 출발·도착하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행하려는 지역에서 승무원이 추천하는 맛집 등도 볼 수 있다.”

● 주력하는 마케팅은 뭔가.

 “고객이 다른 사람에게 캐세이 퍼시픽을 추천하는 구전 마케팅이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

● 올 상반기 실적이 좋았다.

 “올 상반기 순이익이 68억4000만 홍콩달러(약 1조306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8억1200만 달러)보다 크게(8배 이상) 늘었다. 상반기에만 1300만 명의 고객이 캐세이 퍼시픽을 이용했다. 항공권의 단가(1인당 운임수익)가 높아져 이익도 늘어났다.”

● 세계 경제 위기에도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브랜드를 차별화하기 위해 7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15차례나 심층 대면 인터뷰를 통한 고객 설문 조사를 했다. 이 자료를 토대로 브랜드의 힘을 강화했다. 또 경기가 나빠도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와 올해 새 비행기를 주문했으며 장거리 노선의 1등석과 비즈니스석에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했다. 고객의 로열티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마일리지 프로그램은 적립하는 것뿐 아니라 마일리지를 쓰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안내를 해준다.”

● 충성도를 높이는 비결은 무엇인가.

 “단순하다. 고객에게 우리 서비스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고객에게 제공하는 뭔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고객이 친밀감을 느끼도록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한국 지사장이 VIP고객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한다. 바로 고객의 생활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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