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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학생도 이해 못하는 중국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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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용환
홍콩 특파원

며칠 전 홍콩 과기대에서 뤼신화(呂新華) 홍콩 특구 특파원(차관급)이 ‘국제정세와 중국 외교정책’을 주제로 강연을 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과기대를 찾아갔다. 중국 외교부 소속의 뤼 특파원은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적용되는 홍콩에서 외교 업무를 주관하는 최고위급 인사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 중국 외교부가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절제와 긴장완화를 위한 대화를 강조하고 있던 때라 어떤 얘기가 오가나 호기심이 일었다. 중국 대륙의 표준어인 보통화(普通話)로 진행된 강연장은 300여 명의 학생들과 대학 관계자들로 빈자리 없이 꽉 찼다. 대부분 대륙에서 온 학생들이었고 홍콩 학생들도 일부 눈에 띄었다.

 뤼 특파원은 비약적으로 발전한 중국 경제에 힘입어 중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국제적 현실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소개했다. 스마트폰으로 e-메일을 확인하거나 인터넷에 접속해 서핑을 하는 학생들도 간혹 보였다.

 하지만 강연이 한반도 정세를 다루기 시작하자 학생들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마른기침을 했다. 뤼 특파원은 연평도 포격 사건이 동북아 평화안정을 저해하기 때문에 남북 양측에 냉정과 절제를 유지하고 대화를 통해 긴장완화를 모색하라는 게 중국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연평도 일대가 분쟁이 있는 지역이라며 잘잘못의 근원을 따지기가 어렵다는 뉘앙스도 풍겼다. 대체로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익히 들어왔던 말들의 되풀이였다.

 질의응답 시간이 왔다. 민간인 거주 지역을 향한 포격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싶어 손을 들었지만 첫 질문은 뒷자리의 중국 학생에게 넘어갔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 중국은 북한의 뒤에서 ‘다거(大哥·보스)’ 노릇을 하는데 이런 행동이 어떤 외교적 이익이 있습니까.” 중국의 국제적 위신 추락을 감수하면서 사고만 치는 북한을 계속 두둔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담겨 있는 질문이었다. 2030년이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질문 공세를 받았다. 다른 중국 학생은 “송나라 때 중국의 GDP는 전 세계의 약 80%, 청일전쟁에서 패할 때 중국의 GDP는 일본의 수 배에 달했다. 국제정세에서 GDP가 얼마나 의미 있나”라고 물었다. 경제 외적인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의 냉엄한 현실을 파고든 것이다. 질문이 끝나자 박수가 터졌다.

 대륙에선 통제 때문에 접근이 어려운 정보가 홍콩에선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쏟아진다. 자유로운 정보 접근과 다양한 시각의 언론을 접할 수 있는 홍콩에서 공부하는 대륙의 학생들은 질문 몇 마디 속에 글로벌 균형감각과 예리한 비판의식을 보여줬다. 하지만 북한의 연평도 민간인 포격 사건 이후 보여준 중국 관리들의 발언들은 여전히 구태의연한 ‘북·중 특수관계’라는 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요즘처럼 말이 잘 퍼지는 세상에 자국 학생들도 수긍하지 못하는 중국의 외교적 처신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자못 궁금해지는 현장이었다.

정용환 홍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