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Special] 비즈리더와의 차 한 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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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 사이 한국에 진출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세 개의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가 있다. 라푸마, 밀레, 아이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들 브랜드는 형제간이다. 모두 프랑스 라푸마 그룹 소속 브랜드다. 이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온 LG패션과 ㈜밀레, K2는 올해 각자 한국 상표권을 라푸마 그룹으로부터 사들였다. 프랑스 라푸마 그룹은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LG패션과 합작법인 ‘라푸마 차이나’를 세워 중국 시장에 진출한다. 라푸마 그룹 필리프 조파르(55) 회장은 “한국 시장에서 라푸마 그룹 브랜드들이 잘 성장하고 있고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라푸마 차이나 설립 행사차 베이징을 찾은 그를 지난달 20일 j가 만났다.

베이징=임미진 기자

라푸마는 1930년 프랑스 남동부의 중소 도시 리옹에서 창립됐다. 라푸마 집안의 빅터·알프레드·가브리엘 3형제가 등산용 가방을 만들어 판 게 시작이었다. 지금도 라푸마 본사는 리옹에 있다. 본사에서 차로 15분 걸리는 곳에 라푸마 집안 사람들 50여 명이 모여 산다고 했다. 그는 창립자 빅터 라푸마의 외손자다.

●80년 동안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뭔가.

 “우리 회사가 작은 마을에서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인구가 3000명 정도인 작은 마을이다. 나도 거기서 태어났다. 라푸마 집안은 그 작은 마을의 삶의 일부다. 마을 근처에 삼촌과 조카들이 모여 산다. 다들 회사를 사랑하고, 회사를 통해 가족 정신이 이어져 내려온다. 우리가 마케팅으로 일어선 기업이 아니라 공장을 갖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것 같다. 공장이 있으면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을 통해 회사의 정신이 살아 숨쉰다.”

●라푸마의 가족 정신은 어떤 것인가.

 “회사를 사랑하고 회사를 키우는 것이다. 회사를 키우는 것은 돈을 버는 것과는 다르다. 양적 성장만 중요한 게 아니라 질적 성장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국 시장을 보자. 우리는 한국의 사업권을 매각했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서 더 이상 돈은 벌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 브랜드 네임은 올라간다. 그게 우리에겐 더 중요하다.”

 조파르 회장은 프랑스 제10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프랑스 대형 컨설팅 업체 보사르(Bossard)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26년 전 라푸마에 입사했고, 입사 2년 만에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부계 혈통이 우선시되는 것은 프랑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성이 라푸마가 아닌 외손자를 후계자로 지목하자 가문 내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외손자가 가업을 잇는 것 때문에 꽤 갈등이 있었다는데.

 “사실이다. 삼촌도 여럿 계셨는데, 외할아버지가 나를 지목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처음 1, 2년 동안도 꽤 이사회 내 갈등이 있었다. 게다가 내가 라푸마에 입사한 1984년엔 회사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런데 내가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하면서 갈등이 사그라졌다. 지금은 친척들 모두 사이가 좋다.”

●이후엔 다양한 브랜드를 인수해 그룹을 키웠다. 어떤 기준으로 브랜드를 인수했나.

 “아웃도어가 우리 회사의 뿌리이기 때문에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타깃이었다. 아웃도어 시장은 매우 세분화돼 있다. 사람들은 그냥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정확히 들어맞는 의류와 장비를 원한다. 우리는 5개 브랜드로 이 시장을 완벽하게 세분화해 공략하고 있다. 유럽에서 라푸마는 트레킹·캠핑 장비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밀레는 산악 중심이고, 르샤모(Le Chameau)는 승마와 사냥용품, 옥스보(Oxbow)는 보드 용품, 아이더는 등반 및 스키용품 쪽으로 세분화돼 있다. 완벽한 포트폴리오라고 본다.”

 아웃도어 쪽에서 확고한 명성을 가진 브랜드 덕에 라푸마 그룹은 최근 닥친 재정위기를 넘겼다. 한국에 라푸마·밀레·아이더의 상표권을 매각한 것이다.

●브랜드가 결국 회사를 살렸다. 좋은 브랜드란 어떤 브랜드인가.

 “뿌리와 역사,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역사란 건 추억과 경험을 뜻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누구나 라푸마와 관계된 이야기를 하나쯤 갖고 있다. ‘우리 아빠가 그 등산가방 있었는데’ ‘우리 집에서 그 침낭 썼는데’ 하는 식이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쌓은 소비자와의 관계가 우리에겐 약속 같은 것이다.”

 인터뷰 내내 그의 곁엔 외동딸 마리 로레인 조파르가 앉아있었다. 그는 인터뷰 전 기자에게 ‘라푸마와 함께 태어난 내 딸’이라고 마리를 소개했다. 자신이 1984년 라푸마에 입사한 그날 새벽 딸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딸과 가업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야기는 다시 아시아로 돌아왔다.

●가업을 딸이 잇게 할 건가.

 “아직 말하기에 좀 이른 것 같지만 그러고 싶다. 프랑스에서 경영대를 나오고 4년간 라푸마에서 일해왔다. 난 딸을 아시아에서 가르치고 있다. 상하이에서 6개월 살며 중국어도 배웠다. 난 딸이 아시아를 집처럼 삼고 살았으면 좋겠다. 유럽 회사의 차기 경영자들은 아시아를 정확히 이해해야만 한다.”

●최근 라푸마 차이나도 설립했다.

 “8년 정도 중국에서 라푸마 사업을 추진했지만 제대로 사업을 하지 못했다. 최대 매장이 스무 개에 불과했다. 파트너를 제대로 만나는 게 매우 중요하다. LG패션은 한국에서 정말 훌륭하게 브랜드를 키워줬다. 중국 문화와 한국 문화가 비슷한 만큼 중국을 이해하고 사업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인터뷰 도중 라푸마의 한국 사업자인 LG패션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프랑스 본사가 지난해 라푸마 브랜드로 올린 매출은 약 8300만 유로(1250억원). 한국 시장의 라푸마는 올해 1500억원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것을 두고 “아시아 디자인의 저력”이라고 표현했다.

●아시아에서 라푸마가 성공한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유럽은 아직 아웃도어 시장이 보수적이다. 우리 그룹만 해도 그렇다. 기능적인 면을 중시해 기술은 잘 발달시켜왔다. 하지만 아웃도어 제품에 디자인을 적용하는 데 있어선 보수적이었다. 그런데 아웃도어가 막 시작된 아시아 시장은 새로운 아웃도어를 시작했다. 기능에 패션과 디자인을 입힌 것이다.”

●아시아의 디자인을 인정하는 것인가.

 “지금은 유럽과 아시아의 패션 시장이 동등하다. 10년 전만 해도 아시아 사람들이 유럽의 패션 유행을 따라갔다. 유럽의 디자인이 앞서 있었고 아시아가 유럽에서 영감을 받았다.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유럽이 아시아에서 영감을 받고 있다. 아웃도어 시장에선 더더욱 그렇다. 소비자들도 유럽과 아시아 간의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국제화 때문이다. 사이즈조차 비슷해지고 있다.”

 그는 한국 등 아시아의 아웃도어 시장은 유럽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새롭다” “혁신적이다” “고급스럽다”는 등의 찬사가 이어졌다.

●구체적으로 아시아 아웃도어 시장은 유럽과 어떻게 다른가.

 “유럽과 달리 아시아엔 두 부류의 아웃도어 유저가 있다. 정말 아웃도어 활동을 위해 기능적 옷을 찾는 이들이 있고, 또 평소 생활을 위해 입는 이들이 있다. 파리나 밀라노를 가면 아직 거리에서 아웃도어를 입고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웃도어 옷이 그렇게 예쁘지 않기 때문이다. 아시아 옷은 다르다. 내 딸도 지금 한국에서 만든 라푸마 재킷을 입고 있지만 예쁘다. 항상 입고 싶어진다.”

●한국 라푸마와 프랑스 라푸마 디자인의 차이점은.

 “가장 다른 점은 색깔이다. 한국 라푸마는 정말 컬러풀하다. 그리고 디테일이 고급스럽다. 솔직히 말하자면, 프랑스 라푸마가 한국 라푸마보다 디자인 면에서 뒤져 있다. 지금 프랑스 제품들은 한국 라푸마 스타일을 따라가고 있다. 아웃도어 시장이 명품화하는 추세에 따르는 것이다.”

●아웃도어 시장이 명품화돼 가고 있다는 건.

“브랜드로 승부하는 시장은 두 가지다. 명품이거나 스포츠거나. 옷을 딱 보자마자 ‘어느 브랜드구나’ 알 수 있는 건 샤넬 아니면 아디다스다. 일반 의류는 그렇게 안 된다. 그래서 스포츠 시장은 명품화 노력이 치열하다. 앞선 디자인을 도입하고 디테일을 강조한다. 또 구찌 같은 명품 브랜드도 최근 스포츠 의류를 내놓고 있다. 한국 라푸마는 이 방향을 제대로 읽었고, 그래서 우리가 따라가고 있다.” 

j 칵테일 >> “겪어 보니 경영자기자 하는 일 비슷”

필리프 조파르 회장은 원래 기자 지망생이었다. 실제로 보사르 컨설팅사에 입사하기 전 2년 동안 경제지 기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겪어 보니 경영자나 기자나 하는 일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정보를 수집하고, 모은 정보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과정이 똑같다는 것이다. 한때 법률가를 꿈꾸기도 했던 그는 “따지고 보면 법률가도 비슷한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자로서의 경험이 경영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지금도 복잡하거나 안 풀리는 일이 있으면 글을 쓴다고 했다. “말과 글은 다릅니다. 말은 생각이 분명히 정리되지 않아도 할 수 있지만, 글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쓸 수가 없어요.” 그는 “생각을 정리하고 요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이라며 “직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할 때도 글을 써서 전달하는 편이다. 훨씬 효율적이고 편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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