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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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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형 템플스테이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다. 오로지 쉬어갈 수 있는 절이다. 경북 안동 봉정사 구견 스님은 “펜션에서 쉬는 것보다 절이 더 마음이 와 닿는 사람이 주로 찾는다”고 한다. 딱 그 정도다. 조계종 템플스테이사업단의 추천의 받아 4곳의 ‘休 가람’을 다녀왔다. 규모가 큰 절보다는 작은 절, 내방객이 많지 않은 절을 골랐다. 조용한 절인 만큼 그에 걸맞은 몸가짐은 필수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해질 녘 멀리 갯벌 바라보며 차 한 잔

해남 일지암 무인 주지스님(맨 오른쪽)과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대웅전 앞에서 별을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일지암은 조선 후기 초의선사가 우리나라의 차 문화를 일으킨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지(一枝)는 초의선사의 또 다른 법명. ‘뱁새에게는 나뭇가지 하나면 그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초의의 거처는 초막 한 채가 다였다. 단출한 일지암 살림은 지금도 여전하다. 초의의 거처를 복원한 자우홍련사와 작은 법당, 스님의 거처가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다.

해남 일지암 북암에 있는 거대한 불상.

일지암 템플스테이는 2년 전 시작됐다. 법당 아래 작은 수련원을 마련하고 나서다. 20~30여 명이 기거할 수 있는 방 4칸짜리 수련원은 해남의 남서쪽 갯벌을 마주하고 있다. 인원이 많지 않을 때는 자우홍련사에 방을 내주기도 한다. 연못 위에 4개의 돌기둥을 얹어 지은 자우홍련사 누마루에는 차탁과 다구가 항시 준비돼 있다. 해질녘이나 동이 틀 무렵 이곳에서 마시는 차 한잔은 늘 운치가 넘친다. 일지암이 내세우는 ‘마음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일지암에서 본 절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다. 예불하기 전 대흥사에서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가 일지암까지 은은하게 들려온다. 늦잠을 잘 수 없게 만드는 소리다. 일지암 템플스테이의 주된 소일거리는 북암 포행(布行)이다. 북암은 일지암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작은 암자. 거대한 바위의 한 면을 깎아 만든 아름다운 미륵불이 자리 잡고 있다. 동백나무숲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아름다운 미륵불을 찾아가는 시간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 가는 길 해남읍에서 대흥사 방면, 매표소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야 한다. 대웅전까지 10분, 다시 일지암까지 20분 걸린다. 휴식형 템플스테이는 연중 아무 때나 가능하나 미리 예약해야 한다. 참가비 3만원. www.daeheungsa.kr, 061-535-5775.

느리게 느리게 탑 오르고 산 거닐고

비구니들이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는 진천 보탑사.

절의 내력은 15년에 불과하지만 알찬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는 곳이다. 연꽃마을이라는 의미의 충북 진천군 연곡리(蓮谷里), 마을 끝에 ‘보련산 보탑사’가 자리하고 있다. 보련산(寶蓮山)은 해발 400m 안팎의 야트막한 산으로 고만고만한 산봉우리가 절을 중심으로 연봉을 이루고 있다. 연꽃 봉우리 꽃술에 해당하는 보련사는 그래서인지 아늑한 느낌이다. 절 살림 또한 서너 명의 비구니승과 몇 명의 자원봉사자가 단출하게 꾸려나간다.

 능현 주지 스님은 “절에 든 사람은 반드시 예불·공양·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쉬고 싶은 분들이나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분들에게는 예불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새벽 예불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는 편이다. 스님은 “ 후기를 보면 새벽 별을 볼 수 있는 예불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고 전한다. 울력 또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자고 난 자리를 깨끗이 하는 게 울력의 첫걸음”이란다.

 스님은 템플스테이 참가자들과 함께 보련산에 자주 간다. 역시 느리게 걷는 포행이다. 보련산은 그리 높지 않아 비구니 스님에게도 무리 없는 산이다. 보탑사는 높이 42.7m의 3층 목탑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1996년에 지어진 목탑은 신라시대 황룡사 9층탑 이후 1300년 만에 재현된 오를 수 있는 탑이다. 목탑 내부를 걸어 올라갈 수 있다. 1층 사방불, 2층 법보전, 3층 미륵전을 차례로 만난다.

●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진천IC로 나와 천안·성환 방면 21번 국도 타고 10분, 다시 보탑사 이정표를 보고 5분 정도 들어가면 연곡리 마을이 나온다. 둘째·넷째 주에는 정기 템플스테이가 운영된다.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원한다면 이때를 피해 가는 게 좋다. 참가비 1인 5만원(휴식형). www.botapsa.com, 043-533-6865.

마당 한가운데 노송과 소곤소곤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다녀간 안동 봉정사 영산암.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방한했을 때 다녀간 절로 유명하다. 당시 여왕은 영산암에도 들렀다고 한다. 봉정사 템플스테이는 이곳에서 진행된다.

 암자는 절이 아니라 ‘ㅁ’자 모양 고택처럼 보인다. 영산암의 출입문이라 할 수 있는 낡은 우화루와 영산암 본당이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으며, 동서로 송암당·관심당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다. 그리고 마당 한가운데에는 부채처럼 가지를 펼친 노송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우화루를 통과해 안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와’ 하는 작은 탄성이 날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그래서 이미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 ‘동승’(2003)의 무대가 됐다.

 유명한 절이지만, 템플스테이를 찾는 이는 많지 않다. 봉정사 구견 스님은 “안동은 워낙 유교 문화가 알려져 있어 절보다는 하회마을을 찾는 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한다. 봉정사 또한 템플스테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지 않다. 특히 겨울에는 동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이 있어 엄숙한 경내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그래서 템플스테이는 늘 소수의 인원으로만 진행된다.

 영산암 뒤편으로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쭉쭉 뻗어 있다. 서리 내린 아침이면 소나무 숲에 정갈한 기운이 가득하다. 숲길을 따라 천등산 오르는 산책로가 이어진다.

●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로 나오자마자 봉정사 이정표가 보인다. 5분 정도 직진한 뒤 사거리에서 봉정사 방면 좌회전, 10분 정도 간다. 참가비(휴식형) 1인 5만원이며, 예약해야 한다. www.bongjeongsa.org, 054-853-4181.

근심 털어내는 물 소리, 바람 소리

동해 부흥계곡 초입에 자리 잡은 삼화사.

삼화사는 심산유곡이 시작되는 두타산 무릉계곡 초입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원명 주지 스님은 “삼화사는 자연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절”이라고 소개한다. 두타산과 무릉계곡의 아름다움이 삼화사 절터에 깃들어 있다는 뜻일 게다. 무릉계곡은 여름에는 행락객으로 붐비지만, 겨울이 되면 어느 곳보다 한갓진 곳이다. 템플스테이 숙소에 누워 있으면 밤새 계곡 물 흐르는 소리와 골바람 소리가 창호지 문틈을 통해 새어 들어온다.

 원명 스님은 오래전 일본·대만의 절을 둘러본 뒤 “격식을 따지지 않은 템플스테이를 운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거기는 다들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더라고요. 절에 오는 사람들이 공양 시간에 맞춰 공양하고 스님들 예불할 때 같이 예불하고.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절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삼화사 템플스테이의 주된 소일거리는 스님과의 차담, 그리고 관음암 포행이다. 본 절에서 관음암까지는 약 30분. 운동화를 신고 가도 무방할 정도로 부담 없는 길이다. 오전 6시 공양을 마치고 관음암으로 향하면, 등 뒤로 발갛게 떠오르는 태양이 뒤따른다. 해발 450m, 초막 같은 관음암에는 청량한 기운이 가득하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디찬 물 한 바가지를 떠먹으면 가슴속까지 정갈해진다. 관음암과 하늘길을 거쳐 다시 삼화사로 되돌아오는 산책 코스는 2시간 정도 걸린다.

● 가는 길 동해고속도로 끝 동해IC로 나와 삼척 방면 7번 국도 타고 가다 효가 사거리에서 우회전. 다시 삼화 삼거리에서 좌회전, 매표소 앞에 차를 주차하고 도보로 5분. 참가비(휴식형) 1인 5만원. www.samhwasa.or.kr, 033-534-7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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