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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쫓는 운동가? 허명 쫓는 망상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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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위키리크스의 미국 외교전문 폭로 파문이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이 사이트 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39·사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영국 BBC는 1일(현지시간) “어산지를 ‘진실을 추구하는 용맹한 활동가’로 보는 팬들이 있는 반면, 민감한 정보를 공개해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 명성 추구자(publicity-seeker)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고 보도했다.

 ◆16세 때 해킹 시작=어산지는 1971년 호주 북부 퀸즐랜드주 타운스빌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은 평탄치 않았다. 그의 부모는 유랑극단을 운영했다. 이 때문에 어산지 역시 정처 없이 전국을 떠돌아 다녀야 했다. 반항의식이 강한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정규교육이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산지가 14살이 될 때까지 37번이나 이사를 다니면서도 학교에 제대로 등록한 적이 없다고 한다. 어산지 스스로 “톰 소여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혼자서 공부하다 과학에 흥미를 느꼈다”고 말한다.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낸 어산지는 컴퓨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특히 해킹에 매료돼 1987년 동료들과 해커 그룹을 결성했다. “해킹한 컴퓨터를 고장내지 말고 (그 안에 담긴) 정보를 공유하자”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하지만 이내 꼬리가 밟혔다. 91년 호주 경찰이 멜버른에 있던 어산지의 집을 덮쳤고, 그는 총 24건의 컴퓨터 해킹 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어산지는 2100 호주달러(약 230만원)의 벌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이 와중에 가정이 파탄 났다. 89년부터 동거했던 여자친구는 어산지가 체포된 후 결별을 선언했고, 둘 사이에 낳은 아들을 데려갔다.

인터폴 웹사이트 공개 수배 페이지에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의 이름이 올라 있다. [인터폴 웹사이트 캡처]

 ◆4년 전 위키리크스 설립=어산지는 석방된 뒤 인터넷 업체를 창립하는 한편 멜버른대에 진학해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해커 시절의 신념은 버리지 않았다. 2006년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내부 고발자들을 위한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를 설립했다. ▶언론의 자유 ▶폭로를 통한 잘잘못 가리기 ▶역사적 기록의 보관 등 세 가지를 목표로 밝혔다. 이렇게 탄생한 위키리크스는 설립 4년째를 맞은 올해 전 세계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4월 미군 아파치 헬기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로이터 기자 등 민간인 12명을 사살하는 생생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7월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공식 집계보다 훨씬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내용 등을 담은 미군 기밀자료 7만7000건을 공개했다. 이번에 국무부의 외교전문까지 공개함으로써 미 정부를 완벽한 궁지로 몰아넣었다.

◆“미 정부 간첩법 처벌 검토”=미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달 30일 미 정부가 어산지를 ‘간첩법’으로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관계자는 “국가안보와 관련 있는 정보를 허가 없이 취득한 뒤 정부로부터 그 자료의 반환을 요구받고도 이를 공개했을 경우 간첩법 처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산지가 호주 국적인 데다, 언론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와 법리적 충돌 가능성이 큰 만큼 간첩법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많다. 그가 전 세계를 떠돌아 다녀 신병 확보가 힘들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한편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는 같은 날 어산지에 대해 성폭행·추행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한 스웨덴 사법 당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188개 회원국에 그를 수배했다. 어산지는 이 같은 자신의 혐의에 대해 “폭로를 막으려는 더러운 음모”라고 반발하고 있다.

김한별 기자

줄리안 어산지는

▶ 1971년 호주 출생

▶ 1987년 컴퓨터 해킹 시작

▶ 1991년 해킹 혐의로 경찰에 체포

▶ 1993년 인터넷 업체 창업

▶ 2003~2006년 대학 수학

▶ 2006년 위키리크스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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