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게임도 TV 중계

중앙일보

입력

"이번 경기를 어떻게 보십니까" "네, 두 선수 모두 공격적인 스타일이죠. 초반에 승부가 갈릴 확률이 높습니다. " 경기 직전 캐스터와 해설자가 주고 받는 말이다.

이어서 두 선수의 전적과 주특기까지 소개된다. 무슨 경기일까. 언뜻 들으면 권투 중계 같기도 한데 경기장이 독특하다. 링이나 운동장은 없고 대신 컴퓨터 2대만 달랑 놓여 있다.

지난 2일 오후 4시. 만화전문 케이블채널 '투니버스(CH38) ' 에서 개최한 '99 프로게이머 코리아오픈' 대회 현장.

흥미로운 건 컴퓨터 모니터 상에서 벌어지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 를 방송으로 중계(매주 목.금 밤10시, 재방영 토 밤9시.일 오전11시) 한다는 점. 이른바 '사이버 스포츠' 시대가 열린 셈이다.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사옥의 1층 스튜디오엔 SF영화에 나올 듯 싶은 기괴한 모양의 세트가 마련되어 있다. 여기에 그로테스크한 의상을 입은 선수들이 출연해 분주하게 마우스를 움직이며 '일합' 을 겨룬다.

바로 옆 중계실 풍경도 재미있다.

인천방송 MC이기도 한 정일훈 캐스터와 스타크래프트 세계대회 1위 입상자인 김도형씨, 만화 '까꿍' 의 시나리오 작가인 엄재경씨가 해설을 맡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게임상황을 바쁘게 분석하며 향후 진행 과정도 예측하는 모습이 스포츠 중계를 방불케 한다.

바로 위층의 주조정실. "카메라 원 준비, 자 들어갑니다" 10개가 넘는 화면을 주시하며 접전이 붙은 지역으로 카메라 이동을 지시하는 황형준 PD. "사실 스포츠 중계와 다를 바가 없어요.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결정적인 장면을 놓치거든요. 그렇다고 게임을 다시 진행시킬 수도 없잖아요. " 때문에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제작진은 출전 선수 못지않게 긴장을 놓는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지난 5월 첫 방송을 내보낼 때만 해도 주위에선 반신반의했다. 사실상 첫 시도였기 때문이다. '게임을 중계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 는 친구 얘기를 듣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게 황PD의 설명이다.

현재 '스타크래프트' 로 대변되는 국내 추정 게임 인구는 3백여만. '스타크래프트' 게임 CD의 국내 판매량은 95만장. 이로 인해 생긴 PC게임방만 전국에 6천5백여군데. '길드' 라고 불리는 전문 동호인 조직이 1천여개. 이젠 프로 게이머를 관리하는 전문 매니지먼트사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게임 산업의 경제 효과도 3조원에 이른다. 게임 산업이 차세대 첨단 산업 중 하나임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아울러 대중문화의 중요한 장르로 부상할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또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식 접근이어서 음악.영화 등 다른 장르에 비해 수용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방송을 통한 게임 중계의 의미는 어두운 게임방에 머물러 있던 '게임 문화' 를 '시청 문화' 로 끌어 올렸다는 데 있다.

하지만 기호가 다양해야 문화의 저변도 넓어지는 법. 게임의 대중화에 촉매제 역할을 했던 '스타크래프트' 가 독점적 지위를 오랫동안 누리면서 이제는 오히려 게임의 다양화를 막는 '장벽' 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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