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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DNA를 찾아내는 혜안,그의 손안에서 책은 명품이 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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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호 02면

1 애술린 본사 사무실 벽면 한쪽에 전시된 애술린의 간행물들.2 명품 브랜드 코치와의 콜라보레이션.명품 백이 북 케이스가 됐다.3 명품 브랜드 낸시 곤잘레스와의 북 케이스 콜라보레이션.4 명품 브랜드 고야드와의 북 케이스 콜라보레이션.애술린의 ‘Memoir’ 시리즈를 고야드 트렁크에 담은 스페셜 에디션의 가격은 2400만원에 이른다.

뉴욕 맨해튼 10th Ave와 11th Ave 사이 26st에 위치한 #601빌딩. 이 건물 18층에 애술린의 헤드 오피스가 있다. 뉴욕매거진이 “하이소사이어티의 완벽한 스타일을 출판물을 통해 구현하는 럭셔리 문화의 제국”이라고 극찬한 곳이다.애술린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샤넬, 루이뷔통, 크리스찬 디올, 카르티에, 해리 윈스턴, 돌체 앤 가바나, 베르사체, 랄프 로렌, 도나 카렌, 엠씨엠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가 브랜드 이미지를 소개하는 브랜드 북을 낼 때 유일하게 디자인과 출판을 의뢰하는 곳이 여기다. 근사한 디자인과 멋진 레이아웃, 고급스러운 제본은 물론 깜짝 놀랄 정도로 파격적인 북 케이스까지 제작해 내는 덕분에 이들이 만드는 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명품 오브제”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또 많은 명품 브랜드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협업) 등 브랜드 전략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파트너로 꼽는 브랜드 컨설팅 회사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 명품·아트북 출판사 ‘애술린’ 발행인 프로스페어 애술린을 뉴욕에서 만나다

사무실 벽장 가득 진열된 유럽 명품 브랜드 책자들은 위세가 등등했다. 그 안에 담긴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사진들만으로도 명품의 진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드넓은 허드슨강이 눈앞에 활짝 펼쳐지는 멋진 뷰를 즐기는 듯 마는 듯, 사무실에는 수많은 디자이너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각자의 책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크고 긴 하나의 책상에서 각자의 컴퓨터를 놓고 따로 또 같이 일을 하고 있었다.전 세계 문화예술의 트렌드를 이끄는 애술린의 대표 프로스페어 애술린(Prosper Assouline)의 사무실은 뉴욕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공간이었다. 사무실의 절반이 온통 유리창으로 돼 있어 에너지 넘치는 뉴욕의 햇살이 사방에 가득했다. 정중앙에 자신 있게 놓인 크고 넓은 그의 책상에는 오래된 지구본, 그리고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에서 사들인 수백 년 전 유럽에서 인쇄된 책들이 쌓여 있었다.

-당신이 만든 책들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부터 인정받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브랜드에서 중요한 DNA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난 남들보다 그런 능력이 조금 예민하게 발달했다. 내 느낌과 생각을 비주얼로 표현한 브랜드 북은 그들이 간절하게 원하던 그런 모습이었다. 그렇게 서로 호흡을 맞추다 보니 명성을 얻게 됐다.”

5 명품 브랜드 샤넬과의 북 케이스 콜라보레이션.샤넬 백의 트레이드 마크인퀼팅 가죽으로 브랜드 북 케이스를 만들어 대히트를 쳤다

-브랜드의 중요한 DNA를 어떻게 집어내나.
“사람들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듯 브랜드도 고유의 유전자가 있다. 만일 이 부분이 쉽게 발견될 수 없다면, 그 브랜드는 발전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그것들을 찾아내 그 의미를 비주얼로 보여 줘야 한다. 만약 찾기 어려울 경우 아이디어를 생각해 그것만의 유전자를 만든 뒤 브랜딩을 시작해야 한다. 찾아가는 과정은 브랜드마다 조금씩 다른데, 우선은 브랜드의 중심축에서 시작해야 한다. 어디서 시작했는지, 무엇을 보여 주기 원하는지, 보여 주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 많은 질문을 만들고 그것에 답하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다시 들여다보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1 명품 브랜드 해리 윈스턴의 브랜드 이미지 광고.2 세계 6개 나라의 호텔과 리조트 소개책자를 선물상자처럼 고급스러운 컬렉션으로 만들었다.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14세 때 샹젤리제 앞에 있던 잡지 디자인 회사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했다. 디자인 관련 자료들을 이곳저곳으로 전달하는 단순한 일을 하며 잡지사의 분위기를 처음 느꼈다. 디자인을 하고, 편집을 하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 그런 캐릭터들에게 강하게 끌렸고 매료됐다. 그 이후 자연스럽게 미술과 패션에 관한 학교를 가게 됐다. 20대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면서 파리에서 광고기획사를 운영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매거진을 만들며, 편집장 겸 발행인을 했다. 그리고 샤넬, 카르티에 등 여러 명품 브랜드의 광고와 비주얼 자료를 맡게 되면서 그 관계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신의 책은 느낌이 뭔가 다르다. 비결이 무엇인가.
“학창 시절 디자인과 패션을 공부하면서 관련 책들에 아쉬움이 많았다. 비싸고, 두껍고, 지루하고, 텍스트만 잔뜩 있었다. 미술과 아트·패션·문화는 모두 비주얼로 전달돼야 하는데 20년 전의 책들은 그런 것을 충분히 보여 주지 못했다. 나는 공부를 위해 외워야 하는 책 대신 보기 위한 책, 느끼기 위한 책, 감정이 살아 있어 그림 하나하나가 내게 이야기하는 그런 책을 합리적인 가격에 만들고 싶었다.
20년 전에 첫 번째 시리즈를 만들었다. 샤넬, 크리스찬 디올, 마들렌 비오네, 알라야의 책 4권을 미니 사이즈 한 세트로 만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3개월 만에 80만 부가 나갔으니.”

-그것이 지금 명품 브랜드들로부터도 사랑받는 ‘Memoir 북(프랑스어로 esse
ntial이라는 뜻)’의 시작이 됐나.

“그렇다. ‘Memoir 북’ 시리즈는 단순하고 세련된 그림들이 매우 쉽고 간단하게 편집돼 있는 디자인과 앙증맞은 미니 사이즈, 합리적 가격으로 인해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 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스타일’에 관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예술, 여행, 패션, 인테리어, 와인과 칵테일 등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환경에 관한 ‘스타일’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재창조해 내는 작업을 좋아한다. 그 에센스를 강한 느낌이 담긴 비주얼 메시지로 전달하는 작업을 즐긴다. 그림은 긴 말이 필요 없다. 좋은 사진들을 멋지게 연결해 인쇄물로 완성하는 과정은 정말 아름다운 작업이다.”

-책을 만들면서 기억에 남는 작업이 많겠다.
“언젠가 샤넬과 작업할 때 우리는 가장 샤넬다운 게 무엇일지에 대해 논의했다. 나는 3개의 샤넬 책을 디자인한 뒤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퀼팅 가죽으로 케이스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가방을 만드는 고급 소재로 책 커버를 만들자는 제안에 그들은 몹시 망설였지만 결과는 대히트였다. 70만원이 넘는 그 미니 시리즈는 지금도 꾸준히 팔려 나가는 스테디셀러다. 또 10년 전 고야드와의 콜라보레이션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당시 내 책들을 담을 수 있는 좋은 북 케이스 트렁크를 만들고자 했다. 당시만 해도 고야드는 지금처럼 브랜드가 확장되기 전이었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만약 루이뷔통과 협업했다면 어쩌면 더 많은 북 케이스를 판매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고야드가 명품 브랜드가 될 것이라는 걸 직감했고 나의 선택은 멋진 결과를 가져왔다. 스페셜 에디션으로 판매되는 고야드 북 케이스와 그 안에 있는 애술린 ‘Memoir 책’들은 2400만원인데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웨이팅 리스트를 받으면서 이 시리즈를 꾸준히 판매해 오고 있다.”

-가장 최근에 만든 스페셜 에디션은 무엇인가.
“한 달 전 미국에서 가장 고급 쇼핑몰로 알려진 LA 근교 사우스 코스트 플라자(South Coast Plaza)에 오픈한 애술린 부티크(그는 북 스토어를 부티크라고 불렀다. 단순한 책방이 아니라 스타일을 파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다)를 기념하기 위해 스페셜 에디션을 제작했다. 크리스찬 디올과 공동 작업한 『American Dior』이다. 총 10권 제작했고 크리스찬 디올의 특별한 스카프와 함께 전시된 이 150만원짜리 책자는 오픈 첫날 매진됐다.”

-가장 최근에 작업한 크리에이티브 작업은.
“여러 가지 브랜드를 위한 작업은 늘 있는 일들이고, 특별히 최근에는 모로코 왕실에서 의뢰한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외부에 말할 수 없으나 왕실의 에센스를 정리된 단어와 그림들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애술린 부티크를 여러 나라에 오픈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20년 전 파리에서 시작해 뉴욕 플라자 호텔 및 삭스 피프스(Saks Fifth), 나이먼 마커스(Neiman Marcus) 등 고급 백화점에 매장을 냈다. LA·라스베이거스·보스턴 등의 대형 고급 쇼핑몰에도 애술린 부티크를 전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인 두바이와 이스탄불에도 매장을 오픈했다. 난 애술린 부티크가 문화공간(Culture Lounge)이라고 생각한다. 라운지처럼 보이는 애술린 부티크는 예술·사진·영화·패션에 관한 고객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

-부인과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
“아내 마틴(Martine)은 내 완벽한 비즈니스 파트너다. 열정적인 나에 비해 그녀는 조용하게 많은 부분을 정리해 준다. 내가 그림의 배열을 본다면 거기 어울리는 키워드와 에디팅은 마틴의 몫이다. 구태여 따로 회의를 하지 않아도 항상 여러 가지 전략적 의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두 배로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마틴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오늘날 애술린을 이만큼 성공적으로 만든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다.”

-파리에서 큰 성공을 이루고 난 뒤 10년 전 본사를 뉴욕으로 옮긴 이유는.
“나는 파리에서는 이미 유명인이었고 모든 사람이 나를 칭송했다. 많은 유럽의 명품 브랜드가 앞다퉈 우리와 일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뉴욕에서, 미국 브랜드와 예술인들에게 인정받지 않으면 진정한 글로벌 회사로서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파리는 유럽에서의 성공을 보장했지만 뉴욕에서의 승부는 전 세계를 향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왔고 오스카 드 라 렌타(Osca De La Renta)의 책을 시작으로 랄프 로렌, 도나 카렌, 낸시 곤잘레스 등 여러 브랜드와 일을 했으며 지금도 매우 활발하게 많은 일을 진행하고 있다. 본사를 옮긴 결정은 매우 적절했으며, 나는 지금 뉴욕과 파리를 오가며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글로벌 패션 포럼’에 초청받았다. 한국에 가 본 적이 있나.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한국의 발전상과 명품 소비시장에 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특히 이번 ‘글로벌 패션 포럼’같은 국제 콘퍼런스를 정부가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랐다. 참으로 멋지고 근사한 일이다. 이번 한국 방문이 매우 기대된다. 지식경제부 공무원들도 만나 보고 싶다.”

-당신이 일하면서 금과옥조로 삼는 말은.
“‘비하인드 더 신(Behind the Scene)’이라는 말이다. 겉으로 화려한 명품 매장을 돌아 뒷문으로 들어가면 작업실이 나온다. 매장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아름다운 옷과 가방을 만들기 위해 공장과 재봉실에서는 수많은 중요한 사람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브랜딩이란 본질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무대를 위해 누군가 보이지 않게 노력해야 하듯 브랜딩에 있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브랜드의 DNA를 만들어 내고 있는 장인의 손길이다. 그것이야말로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Basic componen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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