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삶의 향기

세상에서 가장 먼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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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일본학

대학생이었을 때 나는 재일 한국인 친구에게서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국적은 대한민국이지만 같은 동족이라도 조총련계 교포들의 국적은 북한이 아니라 아직 ‘식민지 조선’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일본과 북한이 아직 국교를 맺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이었고 그 사실을 알고 당시 몹시 놀랐었다.

 조총련계 동포들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지역을 국적으로 가진 까닭에 여권도 나오지 않을뿐더러 마음대로 해외여행도 다니지 못한다. 다만 조총련계 동포이자 북한의 축구 대표선수로 뛰고 있는 정대세 같은 이는 예외적 조치로 특수 여권이 발급된다고 한다. 국제화 시대인 현실에서 조총련계 동포들은 참으로 불편하게 사는 것이다.

 일본 민주당 정부는 그동안 고등학교 무상화 정책을 추진해 왔는데 처음에는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고려돼 조총련계 조선인학교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각 분야에서 조선인학교만 제외하는 것은 또 하나의 차별이며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길 것이라는 의견이 제출돼 조선인학교도 무상화하겠다고 거의 결정된 상태였다. 그러던 중에 이번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났다. 이번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규탄한 일본 정부는 조선인학교 무상화 방침을 즉각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태로 인해 꽃다운 어린 군인들이 전사했고 민간인도 희생됐으며 연평도 주민들 대다수는 현재 섬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각국의 경제봉쇄 강화로 북한 주민들은 더욱 고통받을 것이고 일본의 조총련계 동포들도 여러 불이익을 받을 것이 예상된다. 북한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일부 양심 없는 일본인들이 조선인학교 학생들을 괴롭히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돌이켜 보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한민족은 일제와 싸우기 위해 미국, 중국, 소련 등에 원조를 요청했다. 해방 후 미·소의 냉전 구도가 사상을 달리하는 남북 분단을 만들었지만, 실제로 남북한을 갈라놓은 원인은 일제의 조선침략에서 비롯되었다.

 분단의 세월 속에서 북한은 같은 한반도이지만 가장 먼 곳이 돼버렸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일본을 빗대서 한 말이 이제는 북한을 칭하는 것 같다. 자동차로 한두 시간이면 충분한 곳을 오가지도 못한다. 이산가족들은 지척에 사는 북한의 부모형제를 마음대로 만나지도 못한다. 한국인에게 가깝고도 매우 먼 곳이 북한인 셈이다.

 1999년 북한은 1953년에 유엔군이 정한 북방한계선(NLL)과 다른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설정해서 그 선을 서해의 남북 영해를 정하는 선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번에도 북한은 남한이 먼저 고의적으로 북한 영해에 포격을 가했기 때문에 응수했다고 공표했다. 북한이 이 주장을 고수하는 한, 서해는 앞으로도 언제든지 전쟁터로 변할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북한이 노린 핵심으로 보인다.

 겨울의 시작과 함께 남북관계는 얼어붙었다. 이번 사태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역사의 막이 올랐다는 느낌마저 든다. 북한은 포화 속에서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망상을 속히 버려야 한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일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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