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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유럽 장악한 중국의 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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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대표

최근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참가국들은 하나같이 중국의 통화가치 재평가를 희망했다. 수출 확대와 일자리 보호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여타 국가들이 소리 높여 위안화 절상을 촉구한 것이다. 유럽연합(EU) 각국이 다양한 목소리로 이런 요청에 가세했고,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도 대(對)중국 압력에 나섰다.

 그러나 중국은 이런 변화를 바라지도 않고, 이런 압력을 막을 전략도 갖고 있다. 그것은 유럽 국가들이 모래알처럼 뭉치지 못하는 속성을 정치적으로 잘 이용하는 것이다. 유럽이 모래알 같다는 것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골치 아파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그는 유럽 전체를 상대로 논의할 때만 되면 “어느 나라에 전화를 걸어야 하지?”라고 고민했다. 이런 고민이 중국 지도자들에겐 즐거운 고민이 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을 분리 통제하려면 어느 나라에 전화해야 하지?”

 일부 유럽 국가들은 수많은 정치·경제 이슈들과 관련해 줄기차게 베이징을 비판해 왔다. 이런 비판을 뭉개고 새로운 우호 세력을 얻기 위해 중국 총리와 대형 기업들은 최근 아테네와 로마를 돌며 대규모 ‘쇼핑’을 즐겼다. 경영 부진에 허덕이는 유럽 기업들을 위해 중국이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다.

 지난달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그리스를 방문해 그리스 국채를 더 사들이겠다고 약속했다. 중국개발은행은 이탈리아에서 태양력 프로젝트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통신업체 화웨이(華爲)와 ZTE는 이탈리아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자동차 회사 체리와 선박회사 차이나코스코홀딩스도 그리스 투자를 늘리는 중이다.

 이처럼 세계 불황이 계속되고 중국의 투자가 확대되면서 중국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비판이 수그러들고 있다. 최근 EU 정책 당국자들은 위안화 절상은 중국의 공장 근로자들을 대거 실업자로 만들 것이라는 베이징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가 나빠지면 중국에 수출해 온 국가들도 피해를 볼 것이란 논리가 먹혀 들고 있는 것이다. 불황이 심각한 국가들은 중국 자금의 유입에 발을 구르고 있을 뿐이다.

 중국엔 절호의 기회다. EU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면 더 많은 유럽 국가들을 베이징의 새로운 경제 파트너로 만들 수 있다. 이는 통화정책을 포함해 중국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EU의 압력을 완화시킬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이 중국 기업들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소지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런 흐름은 EU 국가들에도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투자는 프랑스와 독일·이탈리아의 하이테크·자동차·럭셔리 제품 산업을 떠받치고 있다. 베이징 당국은 중국이 유럽 경제에 파고들수록 유럽이 미국과 협력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란 정치적 계산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중국은 마침 세계 불황을 계기로 수출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성장 모델을 내수 중심 체제로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런 변화는 서방세계 번영의 열쇠를 쥐고 있다. 베이징이 이들을 상대로 중국 내 경쟁의 룰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거대한 경제력을 통해 서방을 주무를 시대가 도래했다.

정리=김동호 기자 ⓒTribune Media Services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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