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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로켓공학의 아버지 베르너 폰 브라운(3)

중앙일보

입력

독일 출신의 막스 보른은 20세기의 거대한 과학 양자역학의 개척자다. 그러나 유대인 논쟁에 휘말려 히틀러에 의해 추방됐다.

“All attempts to adapt our ethical code to our situation in the technological age have failed. 기술의 시대인 지금 윤리규범을 우리의 상황에 적용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실패했다” -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 독일출신의 미국물리학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1954) –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독일에서 미국으로 강제 추방된 막스 보른의 지적처럼 이제 과학과 기술에서 윤리와 도덕을 운운하는 것은 시대와는 덜 떨어진 시시껄렁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정확히 이야기해서 윤리와 도덕을 통제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과학과 기술은 국가 경쟁력이다. 국부를 가늠하는 잣대다. 강대국은 선진과학기술이 말해준다. 이렇게 과학과 기술이 모든 것을 말하고 지배하는 시대에 과학의 윤리 도덕이 가능할까?

거짓만이 윤리와 도덕의 잣대는 아니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과학자에게 기대는 윤리와 도덕이 무엇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의 도덕과 윤리가 무엇인가? 황우석 교수의 사태처럼 거짓이 비판하는 표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어느 못사는 후진국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하는 과학자가 있다면… 그리고 고등동물복제에 매달리는 과학자가 있다면… 그리고 합법적으로 살인적인 무기개발에 참여하고 과학자는… 그들은 사기논문을 쓴 황우석 전 교수보다 낫다고 볼 수 있을까?

4월21일은 과학의 날이다. 국민들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과학기술발전에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기 위하여 제정한 날이다. 과학문화와 대중화를 유도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1967년 4월 21일 설립되었던 과학기술처(훗날 과학기술부) 탄생 1주년을 맞이하여 1968년 4월 21일부터 과학의 날 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과학의 날은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잡지인 <과학조선>을 창간했으며 과학기술보급회를 창립한 김용관씨가 “생활의 과학화! 과학의 생활화!”를 목표로 1934년 4월 19일에 과학의 날 행사를 개최하여 국민들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대대적인 국민계몽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최초의 과학의 날 행사를 4월 19일로 정한 이유는 그 당시 인류의 사상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 진화론의 주창자 찰스 다윈의 사망일로 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가 과학의 날을 핑계로 민족운동을 전개한다고 하여 이 행사의 지도자인 김용관 선생님을 감옥에 가두고 더 이상 이 행사를 계속하지 못하게 하여 과학의 날 행사는 더 이상 전개되지 못하다가 과학기술처 설립을 계기로 1968년 부활하게 되었다.

지난 4월21일 국내 주요 언론들은 서울대와 KAIST 등에 근무하고 있는 과학자와 기술자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물론 동감은 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는 내용이었다.

국내 유명연구기관 과학자들 ‘한국 떠나고 싶어’

베르너 폰 브라운은 로켓공학에서 독보적인 과학자였다. 미국은 그를 최고의 과학자로 대우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비난도 쏟아져 나왔다.

주요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소에 재직 중인 과학기술인 10명 중 8명이 “기회가 오면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한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또한 10명 중 6명은 경제적 처우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과학기술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10명 중 3명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조사 결과 과학기술인의 46%가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인들에 대한 사회 인식이 낮다고 답했다. 사회인식이 높다는 응답은 10.5%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서 과학기술인에 대해 별 존경심을 갖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다.

경제적 처우가 높다고 답한 과학기술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과학자가 된 것을 후회하는 이유로 절반 정도가 임금(43.5%)을 꼽았고, 사회적 지위(25.5%), 직업 안정성(12.5%) 순으로 답했다.

설문조사를 실시한 서울대 교수는 “대부분 국내 최고의 연구기관에 소속돼 있고 경제적인 대우도 좋은 편인 과학기술인들이 답한 결과라 더욱 충격적이다”라며 “아마 이보다 연구여건, 사회적 인지도, 경제적 처우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과학기술인들의 불만 정도는 훨씬 심각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이 교수는 우리나라 이공계 기피현상이 매우 심하다는 내용도 지적했다.

이공계기피현상, 과학기술인들 사회적 모범 보여야

풀어서 정리해 보자.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그들의 심정을 모를 게 아니다. 더구나 과학기술은 다른 학문보다 연구여건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국내에서는 돈을 많이 주지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느낀다는 내용도 이해할 수 있다. 누가 돈 많이 주는 것을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모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과학자에게도 돈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민족이라는 유대감도 있을 것이고,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고 해도 조국의 과학기술발전에 매진하는 것도 커다란 보람이 될 것이다.

과학기술인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사회적인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서 존경해주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과학자들이 우리나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은 바 없다. 그리고 과학자는 ‘토종’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는가?

아인슈타인은 나치 히틀러에 항거한 지식인

이공계 기피는 심각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노골적으로 돈으로 풀려고 한다. 예를 들어 이공계 지원자에 대해서는 학자금 이자를 대폭 줄여준다거나 취업알선에도, 병역문제에도 여러 가지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인들이 모범을 먼저 보이는 일이 필요하다. 부총리제도까지 두었던 과학기술부가 교육부에 병합될 때 아무런 저항도 없는 것을 보면서 선배 과학자에게 경의를 표할 후배는 없다. 노벨상을 받았다 해도 그럴 것이다.

가치중립을 내세우며 “조 삼촌이든 샘 삼촌이든 부자 삼촌만이 된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때 이공계기피 현상도 해결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그저 똑똑한 과학자만이 아니라 나치 히틀러에 과감하게 항거한 지식인이라는 것은 이미 언급한 내용이다. 아무리 대단하고 영향력이 있다 해도 로켓공학의 아버지 폰 브라운이 아인슈타인과는 결코 잽이 될 수 없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다. (계속)

김형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