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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원 ‘한 번에 작곡가 하나’ 이번엔 드보르자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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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첼리스트 양성원씨는 22년 전 드보르자크 협주곡을 처음 연주했다. 22년 만에 이 작품을 녹음해 이달 앨범을 내놨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1988년 미국 인디애나 음대. 첼로를 하는 한국 학생 하나가 일을 벌였다. 학생 중심의 오케스트라를 꾸려보자고 제안했다. 이름은 간편하게 지었다. ‘픽업(pick up) 오케스트라’는 이렇게 창단식 겸 해단식 공연을 열었다. 주인공은 양성원(43)씨다. 11세부터 프랑스에서 첼로를 공부하고 미국으로 옮겨온 참이었다. 빵과 커피를 사 들고 친구들을 설득했고, 공연 포스터도 직접 만들어 교내 곳곳에 붙였다.

 공연 시간은 총40여 분에 불과했다. 한 곡이면 충분했기 때문.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b단조)이다. 양씨는 “첼리스트에게, 특히 남성 연주자에게 드보르자크 협주곡은 꿈이자 목표죠”라고 설명했다.

“1악장이 시작되면 3분 동안 굉장하게 울리는 오케스트라의 총주, 그리고 거기에 가세하는 굵직한 첼로가 전율을 일으킵니다.”

 ◆꿈의 작품=이 작품은 드보르자크의 두 번째 첼로 협주곡이다. 작곡가가 미완성 상태로 남긴 첫 번째 협주곡보다 월등히 많이 연주된다. 비극성과 서정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양씨는 어린 시절부터 이 곡에 빠졌다. “열 살 때쯤 공부할 곡은 제쳐놓고 이 작품을 흉내 내다 혼나곤 했어요.” 그로부터 10년 후 그는 미국에서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 꿈의 작품에 한발 가까이 갔다. 그리고 올 2월 이 작품을 녹음했다. 드보르자크가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하며 조국인 체코에서 초연했던 그 장소를 찾아갔다. 프라하의 권위 있는 공연장인 루돌피눔이다. 체코 필하모닉과 함께 드보르자크를 연주하는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오래 기다려야 했다.

 이달 초 나온 앨범에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루돌피눔의 음향이 담겨있다. 후기 르네상스 스타일의 높은 천장과 좋은 나무로 된 마감재의 조합이 만든 소리다. “수년 전부터 계획했던 프로젝트에요. 2월, 드디어 무대에 올라서 오케스트라 전주를 듣는데 피부를 파고드는 음향이란 게 느껴졌어요.”

 ◆작곡가 완전정복=드보르자크는 그에게 다섯 번째 작곡가다. 코다이(2000년), 바흐(2005년), 베토벤(2007년), 슈베르트(2009년) 등 ‘한 번에 한 작곡가’를 원칙으로 앨범을 냈다. 작곡가의 삶 전체를 파고들어 앨범 하나를 완성했다. “이렇게 해야 속이 시원해요. 슈베르트 이후 모두들 브람스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어려서부터 간직한 제 이상을 이제 보여줄 때가 됐다고 느꼈어요.” 그는 이번에 드보르자크가 제자에게 보내는 메시지, 슬픔의 노래 등을 세세하게 분석해 연주했다.

 첼리스트로서 또 하나의 산을 넘은 양씨. “이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요. 열 살 때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것 중 마흔이 넘어도 설레게 하는 것이 있느냐고 말이죠.”

 그는 내년 신년 음악회에서 정명훈과 함께 이 협주곡을 연주한다. 그가 다음에 ‘완전정복’ 해야 할 작곡가는 누구일까. “다음 앨범도 깜짝 놀랄 만큼 큰 산입니다. 공개할 순 없지만 이미 녹음까지 마쳤답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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