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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18> 재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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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보험은 미래를 대비하는 금융상품입니다. 보험사는 일정액의 보험료를 받고 사고가 났을 때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합니다. 그런데 9·11 테러나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같이 대규모의 사고가 났을 때 보험사는 막대한 보험금을 지급하다 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막기 도입된 제도가 재보험입니다. 용어는 다소 생소하지만 대규모 사고가 발생했을 때마다 큰 빛을 발하는 재보험을 소개합니다.

권희진 기자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는 사망자 2982명, 보험 손해액 220억 달러를 불렀다. 수백 개의 재보험사가 위험을 분담해 보험사파산을 막고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었다. 사진은 당시 테러집단이 납치한 비행기로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공격하는 장면. [중앙포토]

영국의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은 자신의 다리에 7000만 달러(약 770억원)의 보험을 들고 있다. 축구를 통해 천문학적 금액을 벌어들이는 그에게 다리는 생명과 같은 것이니 이 정도 금액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반대로 베컴이 다쳤을 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보험사는 계약을 꺼릴 수밖에 없다. 언제 다칠지도 모르거니와 한번 다치면 보험금을 어마어마하게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베컴뿐만이 아니다. 엄청난 가격의 미술품이나 보석, 수천억원의 화물을 싣고 가는 선박이나 항공기 모두 보험사가 보험 인수를 꺼리는 대상들이다. 사고 한번 나면 자칫 회사가 심각한 경영난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험사가 보험을 계속 거절한다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문제가 심각해진다. 미술품은 금고에 꽁꽁 묶여 관람객을 맞이할 수 없고 고가의 화물은 아예 수출입이 불가능해진다. 숭례문같이 중요한 문화재는 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해 혹시나 문제가 생겨도 복구할 돈을 마련할 수 없다.

원보험사 재정 안정 돕고 보험계약자 보호 이점

보험사들은 이 같은 거대 위험에도 적절한 보험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재보험이란 제도를 두고 있다. 재보험은 보험사가 떠안은 계약의 일부를 다른 보험사에 넘기는 것이다. 쉽게 말해 ‘보험사가 드는 보험’인 셈이다. 보험사는 개인이나 기업이 사고로 입게 되는 경제적 손실을 보상해준다. 그런데 이 경제적 손실이 커서 보상해줘야 하는 금액이 많을 때 보험사도 큰 경제적 손실을 입는다. 이를 보상해주는 것이 재보험이다. 원래의 계약을 맺은 보험사를 원보험사라고 부르고 원보험사와 계약을 맺는 보험사를 재보험사라고 한다.

 재보험은 원보험사가 큰 위험을 떠안을 수 있는 여력을 마련해주고 경영안정성도 유지시키는 장점이 있다. 이외에도 원래의 보험계약자를 보호해주는 이점이 있다. 보험사가 만약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면 보험계약자는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러나 보험사가 적절한 금액의 재보험에 가입했다면 비록 파산해도 보험금의 일정 부분을 지급받을 수 있다.

1370년 유럽서 첫 도입 … 한국선 1963년 첫 회사

재보험의 역사는 길게는 137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배를 몰기에 위험한 구간이었던 스페인의 카디스에서 네덜란드 슬루이스까지의 항해에 재보험이 도입됐다. 그러나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보험사의 영세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재보험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후 산업화와 함께 대형 계약이 증가하면서 재보험 수요가 늘었다. 처음에는 원보험회사들끼리 돌아가며 재보험을 맡았다. 이게 커지면서 재보험 전문사가 탄생했다. 1846년 최초로 전업 재보험사인 독일의 쾰른 재보험사가 설립됐고 1863년 스위스에서는 스위스 재보험사가 생겼다. 이후 프랑스·오스트리아·미국·영국에서 재보험사가 속속 나타났다. 한국은 전업 재보험사로서 코리안리재보험이 있다. 1963년 코리안리의 전신인 국영 대한손해재보험공사가 국내 재보험 사상 최초로 설립됐다.

 재보험의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 큰 위험을 잘게 나눠 여러 회사가 갖는 방식이다. 원보험회사의 규모가 작거나 담보력에 한계가 있을 때 고가품을 싣고 가는 선박의 침몰과 같은 대형 위험을 단독으로 인수하기 어렵다. 이럴 때 이 위험의 일부를 재보험사에 전가하고 일정액의 보험료를 지급한다. 재보험사는 이렇게 보험사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기반으로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보험사에 계약한 보험금을 지급한다. 또 재보험사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의 일부를 또 다른 재보험사에 넘길 수 있다. 이렇게 서로 넘기고 보험료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위험은 잘게 쪼개진다. 큰 사고가 발생해도 보험사는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게 된다.

 또 이 과정에서 특정 국가의 위험은 전 세계적으로 분산된다. 한 국가에서 원보험회사가 인수한 대형 위험은 세계 주요 재보험시장을 통해 여러 재보험사로 나눠진다. 이를 통해 특정 국가에서 큰 자연재해가 발생해도 그 국가의 보험산업이 파탄에 빠지지 않고 적절한 보상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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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보험사간 위험 분산·재보험 비슷한 ‘공동보험’도

재보험과 유사하게 원보험사들이 위험을 나눠 갖는 ‘공동보험’이 있다. 엄격히 말해서 재보험은 아니지만 위험의 분산이란 측면에서 재보험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사업 전체에 대한 보험을 한 개의 회사에 들 수도 있지만 구간 구간을 나누어 여러 보험사로 분산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원보험사는 위험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계약자는 보험사가 파산해서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재보험사들도 공동보험을 통해 원보험사의 위험을 나눠 갖기도 한다. 위험도가 특히 높거나 금액이 매우 커서 단독 재보험으로는 감당이 안 될 때 다수의 보험사가 재보험을 인수한다. 이른바 ‘재보험 풀’을 활용하는 것이다. 원보험사는 위험의 일정 부분을 분담하고 나머지를 재보험 풀에 넘기면 풀에 소속된 회사들은 이를 미리 정한 비율에 따라 배분한다.

 원보험사의 위험이 재보험사에 의해 잘게 쪼개지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항공기 보험이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엄청난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한다. 기체만 3000억~4000억원에 이르고 죽거나 다치는 인원도 200~300명에 달한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배상책임을 떠안고 화물에 대해서도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심지어 비행기가 건물을 덮치는 경우는 피해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이 같은 엄청난 위험에 대해 원보험사는 수십 개의 재보험사와 계약을 한다. 위험이 쪼개지다 보니 재보험사들이 부담하는 위험은 전체의 일부로 줄게 된다. 사고가 나도 보험금을 무리 없이 지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는 사망자 2982명에 보험손해액만 약 220억 달러에 달했다. 이를 보험사가 혼자 부담했다면 파산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고 피해자도 보상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수백 개의 재보험사가 위험을 분담하고 있어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었다. 당시 보험금을 계산하는 데만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을 만큼 많은 보험사가 이 사고에 대해 책임을 졌다.

월드컵 16강 진출 경품도 재보험
2002년 40%에 그친 보험요율
2006년에는 80%까지 치솟아

재보험 하면 대규모 자연재해나 항공기 추락 같은 대형 사고를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보험사가 큰 위험을 떠안아야 하는 모든 보험은 재보험 대상이다. 가령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올라갈 경우 경품을 지급하는 행사를 한다면 주최 측은 보험에 들어 이에 대비한다. 보험사는 한국이 16강에 오를 가능성을 따져 보험료를 받고 16강 진출 시 거액의 보험금 지급을 대비하기 위해 재보험을 든다.

 실제로 2002~2010년 동안 월드컵이 개최될 때마다 국내 재보험사인 코리안리는 월드컵 재보험을 받았다. 비록 규모는 항공기나 선박 재보험에 비해 소액에 불과하지만 보험요율 추이를 통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력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팀의 16강 진출 보험요율은 40%였다. 16강에 진출하면 원보험사는 보험금을 받는데 이를 받기 위해 재보험사에 내야 하는 보험료가 보험금의 40%라는 얘기다. 8강 진출은 13~14% 정도였다. 당시 코리안리는 원보험사와 총 30건의 계약을 맺었고 60억원의 보험료를 거뒀다. 그러나 한국팀이 4강 신화를 일궈내면서 건당 3000만원에서 10억원 등 총 170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한국팀의 16강 진출에 대한 보험요율이 지난 대회의 선전으로 70~80%까지 치솟았다. 당연히 보험료가 비싸 재보험에 가입하는 원보험사가 없었다. 8강 진출에 대한 요율도 30%까지 높아졌다. 당시 성사된 계약은 총 5건에 불과했다.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조 예선 탈락이라는 성적을 거두자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보험요율은 다시 낮아졌다. 그래도 4강 경험과 선수들의 해외진출 활성화, 세계 축구의 평준화 등으로 2002년만큼 내려가지는 않았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16강 진출 보험요율은 48%였고 8강은 18%였다. 16강에 대해서는 요율이 높아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고 8강에 대해 15건이 성사됐다.

 월드컵 보험을 받는 재보험사 입장에서는 한국팀이 탈락할수록 수익이 생긴다. 보험금을 지급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리안리는 이런 걱정 없이 월드컵을 즐겼다고 한다. 이미 여러 재재보험을 들어 한국팀이 16강이나 8강에 올라가도 손실을 최소화하도록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이다. 코리안리 박헌정 팀장은 “2002년 당시 회사에 일부 손실이 있기는 했지만 오히려 4강 진출로 업무효율성은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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