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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보다 아름다운 … 장미란, 아시안게임 금 따며 그랜드슬램 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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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이 역도 75㎏이상급 용상에서 바벨을 들어 올리고 있다. 장미란은 합계 311㎏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광저우 AP=연합뉴스]


한국이 낳은 여자역도의 세계 최강자 장미란(27·고양시청)의 별명은 ‘로즈(rose)란’이다. 그녀의 이름에 장미가 들어간다는 이유도 있지만 장미보다 아름다운 마음씨 때문이다. 착한 장미란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면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장미란은 19일 중국 광둥성 둥관체육관에서 열린 최중량급(+75㎏급)에서 합계 311㎏(인상 130㎏, 용상 181㎏)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대 라이벌 중국의 멍수핑(21)에게 인상에서 5㎏이나 뒤졌지만 용상에서 이를 만회하고 합계에서 타이를 이뤘다. 결국 몸무게가 780g 덜 나간 장미란이 멍수핑을 물리치고 세 번째 도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며 그램드슬램을 완성했다.

광저우=김효경 기자

◆그램드슬램=역도에서는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우승한 것을 뜻한다. 다른 종목은 이들 3개 대회 외에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을 추가하지만 역도의 경우 아시아선수권대회는 2진급이 참가하기 때문에 그랜드슬램에서 제외한다.

“몸 아팠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2005·06·07·09 세계선수권 우승

장미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5년, 2006년, 2007년,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4회 우승 등 그동안 세계 무대를 휩쓸었지만 유독 아시안게임과 인연이 없었다.

 이날 금메달을 확정한 뒤 장미란은 “부상으로 지난해 동계훈련을 못했고,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훈련프로그램을 다 소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없는 게 늘 아쉬웠는데 응원해 주신 국민들 기대에 부응할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음도 짱, 실력도 짱=장미란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인간적 매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번 대회 수영 여자 평영 200m에서 금메달을 따며 유명해진 정다래는 친한 선수로 장미란을 꼽았다. 정다래를 전담하는 안종택 코치는 “장미란은 스타답지 않게 소탈하다”고 전했다.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의 대모격인 이에리사 용인대 교수도 “사람을 정말 편안하게 만든다”며 칭찬했다. 프로야구 두산의 김경문 감독과 SK 김성근 감독도 장미란을 야구장에 초청하는 등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마음의 빗장을 열게 만드는 매력을 그녀는 갖고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

 주변 사람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도 최고다. 장미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 인터뷰 요청에 “사재혁 선수 먼저 인터뷰해 주세요. 관심이 필요한 친구예요”라며 후배를 배려했다. 두 동생의 휴대전화 요금을 일일이 챙기기도 한다. 돈도 많이 벌었지만 아껴 써야 한다는 신조와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다. 태릉선수촌 식당 총책임자 신승철씨는 장미란에게 감을 한 상자 선물받은 적도 있다. 자신을 위해 특별히 신경을 써 주는 관계자들에게 보답하는 의미였다. 김기웅 역도 대표팀 감독은 “미란이는 아플 때도 내색을 하지 않는다. 너무 아픈 티를 내지 않는 것이 흠”이라고 말했다.

 ◆한국 역도 위해 휴식 없는 강행군=장미란은 지난 9월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의 최고기록인 326㎏에 크게 못 미치는 309㎏을 들어 3위에 그쳤다. 이유가 있었다. 최근 몇 년간 휴식 없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를 상대하는 중국 선수들이 탕궁훙-무솽솽-멍수핑으로 바뀌는 동안에 꿋꿋이 정상을 지켰지만 그 만큼 지쳐갔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

 장미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초점을 두고 강행군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고, 베이징에서도 당당히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컨디션 조절이 필요했지만 이듬해 세계선수권이 자신의 소속팀이 있는 경기도 고양에서 열리는 바람에 군말 없이 출전해 다시 힘을 쏟았다. 결국 장미란은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4연패를 달성하는 위업을 이뤘다.

 그러나 올해도 장미란은 쉬지 못했다. 연초 교통사고를 당해 동계훈련을 거의 하지 못했지만 세계선수권 참가를 강행했다. 세계선수권에서 입상을 해야 2012년 런던 올림픽 출전 쿼터를 얻을 수 있어서였다. 후배들을 위한 자기희생이었다. 아시안게임 직전인 10월에 열린 전국체전에도 출전했다. 전국체전은 아마추어 선수가 소속팀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여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도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 내리막을 걷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임정화(여자 48㎏급)가 계체에 실패하는 등 18일까지 노 골드에 그쳤다.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경기에 나선 장미란이 최후의 희망이었다. 대회가 끝날 때마다 “이젠 정말 쉬고 싶다”면서도 묵묵히 바벨을 드는 장미란이다. 그녀는 장미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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