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벌레 밟을까봐 땅 보고 걷는 알리가 바보일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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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알리는
바보가 아니다
안도현 글
김준영 그림
계수나무
140쪽, 9500원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단 석 줄로 이뤄진 시 ‘너에게 묻는다’로 가슴 찌르르한 감동을 자아낸 시인 안도현. 그가 쓴 성장동화다. 연탄, 도토리 등 작고 소박한 소재에서 큰 울림을 빚어내는 그의 솜씨는 여전하다. 1960년대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이제는 곤충을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된 주인공이 친구 ‘알리’와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형식인데 만만치 않은 여운이 있다.

 ‘알리’의 이름은 판수. 장차 판사가 되라고 아버지가 지어줬지만 푼수에 가깝다. 콧물 질질 흘리고, 땅만 보고 걷는다. 머리가 또래 아이들 어깨 밑에나 미칠 정도로 키도 작다. ‘알리’란 별명은 얼굴색이 검고 입술이 “썰면 한 접시가 나올 정도로” 두터워 미국 권투영웅 무하마드 알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갔다가 나비를 보고는 어디 사는지 궁금해 수업을 빼먹고 하루종일 들판을 헤매기도 하고, 이승복을 추모하는 반공웅변대회에서 웃었다고 추궁하는 선생님에게 “저는 공산당을 모르는데요”라 답했다가 혼쭐이 나기도 한다.

 동네 어른들은 그런 ‘알리’를 두고 바보라 부른다. 그런데 그는 바보가 아니다. 벌레들을 밟을까봐 땅을 보고 걸을 정도로 섬세함이 있다. 말똥구리를 붙잡아 날개를 떼고 즐기는 아이들과 맞서 싸우는 용기도 있다. 술지게미로 배를 채우는 처지이면서도 동네에 4대밖에 없는 TV주인에게 부탁해 토요일이면 온동네 사람들을 위한 ‘TV시청 잔치’를 열 만큼 생각이 깊다. 주인공이 그린 ‘알리’를 보면 누구라도 그를 바보라 생각하지는 않을 게다.

 베트남전에서 다리를 잃은 왕 하사 아저씨, 양조장집 도련님 명길이, 풍금을 칠 줄 아는 새침떼기 성미희 등과 만들어가는 추억은 아련하다. 그러면서도 “뜰앞에 활짝 핀 라일락 꽃 향기를 맡으며 쓴다”로 시작하는 성미희의 ‘연서’를 받은 주인공이 ‘우리집 앞엔 먼지 풀풀 나는 도로뿐인데…뒤뜰의 감나무를 끌어올까…감꽃은 아직 피지도 않았는데…’하며 머리를 싸매는 장면에선 웃음이 나온다.

 어른도 함께 읽으면 좋을 따뜻한 이야기다.

김성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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