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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작가 뺨치는 상상력, 부쩍 커진 자신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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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문제적 작가 박민규(42·사진)씨가 『더블』(창비)을 냈다. 『카스테라』 이후 5년 만의 소설집이다. 그간 쌓인 24편 중 18편을 추렸는데, 작품을 묶은 방식 역시 그답다. 9편씩 두 권을 만들고 각각 ‘side A’, ‘side B’라 이름 붙였다. 옛날 레코드판(LP판)처럼 말이다.

 추억의 선율처럼 의미를 따지거나 재단하려 하지 말고 가볍게 즐기라는 뜻일까. 두 권이니까 기쁨도 두 배로? 그런 것 같다. 60대 노부부의 자살문제를 다룬 ‘누런 강 배 한 척’, 40대 말기암 환자의 최후를 그린 지난해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근처’ 정도를 빼면 대부분 돌출적 상상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1권(side A)에 실린 ‘깊’과 ‘크로만, 운’은 본격 SF작가도 머쓱해질 정도다.

 먼저 ‘깊’. 25세기가 배경이다. 해저 지진 때문에 생긴 1만9251m 깊이의 해구를 탐사하는 전지구적 프로젝트가 소재다. 단순한 모험기가 아니라 인간과 인공, 삶과 죽음, 죽을 게 뻔한데도 불가항력적으로 끌리는 심연에의 매혹 같은 화두를 던진다. ‘크로만, 운’은 우주 어딘가에 지구와 비슷한 환경의 또 다른 지구가 존재한다는 평행우주론에 얼추 들어맞는 얘기다.

 2권에 실린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는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딜도’는 남성 성기를 본뜬 여성용 자위기구를 뜻한다. 발기 부전에 차도 못 파는 50대 퇴물 자동차 판매원은 아내와 대판 싸우다가 딜도를 발견한다. 불쌍한 아내, 은밀히 즐겨온 것이다. 여기서 끝났으면 사회극이 됐을 것. 작가는 그 불쌍한 남자를 화성으로 보내 거대한 성기를 가진 암컷 괴물을 만나게 한다. 그 남자, 성교한 후 결국 차도 팔아 치운다.

 박민규, 2000년대 중반 문예지 대산문화에서 문학 선배들에게 ‘XXX 마이싱’이라며 욕설을 해댔던 그다. 이번 소설집 역시 기존 소설 문법을 조롱하거나 어깃장을 놓는 느낌을 준다.

1권 첫머리 제사(題詞) 격의 글에서 박씨는 다음 같이 밝혔다. ‘나는 흡수한다. 분열하고, 번식한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의 채널이 될 것이다.’ 기성에 대한 반항과 탈주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감까지 붙은 모양이다.

 박씨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단편 ‘아침의 문’으로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18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시상식이 있었다. 그는 지난해 황순원문학상 시상식에서처럼 복면을 쓰지는 않았다. 대신 짙은 선글라스를 썼다.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송구스럽지만 난 요즘 언젠가 찾아올 내 인생의 마지막 날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최대한 열심히 쓰겠다”고 했다. 『더블』 역시 그가 최선을 다해 쓴 책일 것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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