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 머리 개성시대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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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삭'(반삭발), '고속도로내기'(머리 가운데를 한 줄로 깎기), '빵구'(머리 한 부분을 두피가 보이게 깎아내기)….

1970~80년대에 중.고교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선생님에게 이런 식으로 머리를 깎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씁쓸하기는 하지만 가슴 한 켠에 묻힌 학창 시절의 '추억'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도 머리에 대해 불만이 많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부 학교에선 '귀 밑 몇 센티까지 기를 수 있다'등의 두발 규정을 어긴 학생들의 머리를 강제로 깎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나 교사들은 생활지도를 위해 단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학생.청소년들은 두발 자율화를 요구하고 있다. 두발제한폐지운동을 벌이고 있는 학생인권수호전국네트워크(nocut.idoo.net.아이두넷)는 100만 명 서명운동 등 온라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14일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두발제한 폐지를 위한 거리축제.퍼포먼스.촛불집회를 열 예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를 이유로 진정을 내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인권위는 13일 진정과 관련한 공청회를 열고 두발제한폐지 운동단체와 교육당국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아이두넷 등 관련 단체들은 인권위의 결정을 지켜본 뒤 헌법소원을 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암울했던 70년대에는 머리카락이 곧 자유와 자율이 상징이었다. 금기.억압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머리를 기르다 '장발 단속'을 하는 경찰관에게 쫓기는 일이 적지 않았다.

요즘 학생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이두넷 운영자 이준행씨는 "두발 통제는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희 교육과 시민사회 공동대표는 "두발은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자기표현의 권리"라며 "그런 머리카락을 싹둑 잘리는 극단적인 단속에 학생들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짓밟힌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3년 전부터 학생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두발 전면 자율화(퍼머.염색 제외)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 숙명여고의 김정대 학생부장은 "학생들에게 두발은 개성.취향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자유와 자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이 11일 두발 관련 규정을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고 실천할 수 있도록 새 지침을 마련한 것은 이런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시교육청은 앞으로 학생회가 두발 관련 규정을 만들어 학교운영위원회에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 수락고 정현진(18)양은 "학생들도 방종과 자유는 구분할 수 있다"며 "무조건 머리를 기르고 싶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적정한 틀 안에서 합리적인 기준을 스스로 만들 수 있음을 어른들이 믿어 달라"고 말했다. 반면 강인수 수원대 교육대학원장(한국교육법학회장)은 "두발이 지나치게 길거나 염색을 해서 건강을 해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줄 경우엔 학교 측의 지도.단속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남중.한애란.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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