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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신상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암표 전쟁. 우리 탓은 아닐까?

중앙일보

입력

지난 13일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예선 한국과 대만 간의 경기를 방송을 통해 시청하던 어머니께서 졸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관중석이 텅텅 비었네? 입장권이 비싸?” 이에 졸자는 무심코 이렇게 답을 했다. “비싸서 못산 게 아니라, 없어서 못 샀을 걸?”

지난 8일 펼쳐진 남북간의 축구 경기 역시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현지 취재 중인 국내 언론들에 따르면, 150여 명의 현지 교민 응원단이 구성되었으나, 현장에서 확보한 암표는 60 여장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에 20위안(12일 한화 - 위안화 기준율 환산 시 3,400원)에 불과한 일반석 표의 암표값이 약 300위안으로 거래되었으나 이 역시도 수급 부족으로 현지 응원단이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 현지 교민 커뮤니티에 따르면, 한국과 대만과의 야구 예선전의 경우에는 10위안 짜리 일반석 표가 경기 시작 직전 3000위안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이에 요 며칠 사이 국내 언론들은 중국의 암표 문화와 대회 조직위원회의 안일한 입장권 판매 관리 등의 문제점을 성토하느라 바쁘다. 이는 ‘자국 대표팀을 응원하려는 실수요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자국민만을 위한 축제로 전락할지 모른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폐해다’, ‘‘정부 차원의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등의 문제제기 혹은 대책 마련 요구 등으로 마무리되는 기사들과 ‘조직적인 응원이 힘들다’, ‘현지 대사관이나 유관 기관의 지원이 필요하다’ 라는 현지 교민들의 의견들로 정리할 수 있었다.

졸자는 이 정리 과정에서 몇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왜 많은 교민들이 미리 표를 구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입장한 사람들은 어떻게 정상적인 표를 구매했을까?

먼저, 페이스북(http://www.facebook.com)에 한국 대 대만의 야구 예선전 현장 사진을 올린 지인(대만 국적자)에게 어떻게 입장을 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지난 5월 23일 1차 인터넷 예매를 통해 대만의 예선 전 경기 입장권을 구매했다고 전해왔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때, 이메일 수신 서비스를 신청했고, 6개월 전 인터넷 예매 시작 공지 이메일을 받고 날짜에 맞춰 예매를 했다고 했다. 현장에서도 살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This is China. You know that.” (중국이잖아. 알면서.)

광저우 아시안게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입장권 구입 방법은 인터넷 예매와 은행(ICBC) 직접 방문 구입, 그리고 현장 구매 등 총 세 가지다. 인터넷 예매의 경우, 지난 10월 25일 3차 예매를 마지막으로 완료되었고, 지난 14일에는 ICBC에서의 구매 역시 물량 소진으로 잠정 중단되었다. 현장 판매의 경우, 물량이 한정되어 있고 일인당 구매 제한 없이 선착순으로 판매되는 만큼 구매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는 방법이다. 중국에서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중국에서의 현장 판매는 곧 ‘매진’을 의미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지난 8일 남북간 축구 경기에 응원을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가 표가 없어 돌아갔다는 한국 교민 응원단 150여명은 왜 예매를 하지 않았을까? 언론에 따르면, 해당 응원단은 광저우 한인 체육회라는 단체의 주선으로 경기장 앞에 모였다고 한다. 이 단체는 경기 시작 시간 3~4시간 전부터 경기장 밖에 모여 암표상들로부터 표를 구입하려 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 단체는 애초 온라인 예매나 은행 방문 구매는 시도하지 않았거나 혹은 현장에서 암표를 구매해도 된다는 계산 아래 응원단을 현장에 집결시킨 것이다. 상식적으로 조직적인 단체 응원을 하고자 했다면 사전 공동 구매 등을 통해 미리 일정부터 계획했어야 한다. 올림픽도, 월드컵도 아닌데 암표가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겠냐고 생각 했을 거라는 건 졸자 뿐일까?

역으로 생각해보자. 졸자가 중국인 암표상이라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선 대상 고객은 단연 한국인들이다. 일본인들에 비해 단체 응원 비율이 높고, 야구, 축구, 농구 등 우승 가능성이 높은 인기 구기 종목의 경우, 한국인들의 집중 응원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 내 온라인이나 은행 방문 등을 통한 입장권 구매율이 낮은 교민들의 소비 성향도 한몫 한다. 지난 2008년 3월 상하이에서 열렸던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남북 대결 당시 경기장이었던 홍커우 축구장을 감싸고 있던 수많은 중국인 암표상들은 모두 예매 없이 현장에서 판매하는 표를 사기 위해 온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졸자는 중국인들의 무분별한 암표 판매를 두둔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거쳐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이르기까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건 바로 우리 국민들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구입 과정과 결재 수단이 복잡한 온라인 예매나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은행에 직접 방문하는 것보다는 웃돈을 주고서라도 현장에서 암표를 구매하면 된다는 생각과 행동이 중국 암표상들에게 일종의 학습 효과를 유발시키고 있다면 너무 황당한 논리 전개일까?

일부 언론이 지적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인들이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것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아시안게임이 중국인들만의 축제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중국 정부 혹은 광저우 시 관리나 공무원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그들에게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주 목적은 개최 그 자체와 내수적 영향에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인 몇 백 명이 축구, 야구 좀 못 봤다고 해서 신경 쓸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국에서 일하고 공부하면서 교민들이 털어놓는 중국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에 공감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중국이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 줄기차게 외치는 중국보다 선진국민이 되는 길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오히려 우리 스스로에게 중국을 더욱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신상린 복단대학 관리학원 중국마케팅센터 수석연구원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보내드리는 뉴스레터 '차이나 인사이트'가 외부 필진을 보강했습니다. 중국과 관련된 칼럼을 차이나 인사이트에 싣고 싶으신 분들은 이메일(jci@joongang.co.kr)이나 중국포털 Go! China의 '백가쟁명 코너(클릭)를 통해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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