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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한국문학 알리기 긴 안목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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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달 18~25일 필자는 독일의 쾰른.본.도르트문트.뒤셀도르프 등지에서 열린 한국 작가들의 낭독회 행사에 참석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여기서 필자는 본 대학의 한국어번역학부 과정 학생들 앞에서 '새롭게 변화하는 오늘의 한국 문학과 그 양상'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고 처음에 이 행사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던 만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과정 모두를 지켜보게 됐다.

올해는 한국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주빈국인 만큼 그 준비 과정에 해당하는 4월의 문학인 행사도 결코 가볍다고만 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몇 가지 필자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곳에 가기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 독일에서는 한국 문학의 의미와 위상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부족한 상태다. 나는 이것을 한국 문학의 존재감이 희박하다는 말로 요약하고 싶다. 시인 황지우, 작가 조경란씨가 낭독회를 한 쾰른대학의 동아시아 박물관에 가서 처음 마주친 것이 일본관이었고 그 앞에 서 있는 벚나무였다. 전통적으로 독일은 일본과 가깝고 문화적 교류가 활발한 사회이며, 그곳에서 한국은 대체로 중국과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에 끼여 있는, 제3세계 국가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인 듯했다. 그곳의 저명한 비평가인 드레프스 교수에게서 이러한 상황이 어쩌면 영원히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말을 들었을 때 필자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개된 쾰른 등지의 4월 낭독회 행사는 준비도 충분치 않고 현지 반응 역시 뜨거웠다고 말할 수 없지만, 몇 가지 중요한 소득은 있었다고 판단된다.

먼저 앞에서 거론한 황지우.조경란씨 두 사람의 낭독회 행사나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황석영.최윤.황지우.허수경씨의 낭독회 행사, 고향 상실을 주제로 삼은 현기영씨와 이순원씨의 낭독회 행사,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내건 방현석씨와 오수연씨의 낭독회 행사 등은 비교적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황석영씨나 오수연씨는 한국 작가가 세계 시민적인 차원의 자각을 가진 사람들임을 분명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 행사에 참석한 문학인들이 세계 문학 속에서의 한국 문학의 위상과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의 의미에 대해 훨씬 더 냉철한 인식을 갖게 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오늘의 경험을 내일에 전수할 수 있는 전담기관이 필요하다. 한국 문학 번역원이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 상설 분과를 둘 수 있으면 좋을 것이고 이들과 상호 협력하는 활동기구를 새로 만드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이 독일 여행의 경험을 통해 필자가 결론적으로 생각한 것은 다음의 두 가지였다.

첫째는 한국이 동아시아의 독자적인 구성원으로 분명히 인식될 수 있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민주화와 개방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 한국인은 일본의 역사의식을 비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모순적인 자기애에 빠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베트남 참전이나 이라크 파병 등에 대해 상대적으로 침묵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 보면 인권과 복지 면에서 천황의 신민인 일본 국민보다 열등한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가 세계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부여받고 한국 문학이 가치 있는 문학으로 인식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속한 사회가 인류적.보편적 가치라는 면에서 가장 앞선 사회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이제는 한국도 들에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것이다. 베를린에서 쾰른으로, 쾰른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ICE 고속열차 안에서 바라본 독일의 들판은 숲과 목초지 가득한 평야였다. 산뿐 아니라 들에 나무를 심어 좁은 것처럼 느껴지는 한반도를 넓게, 풍요롭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나무를 심자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를 낙토화하자는 것이고, 경제 일변도 사고법에서 경제를 문화와 생태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사고법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문학에 대한 우리의 사고가 나무를 심고 길러내는 것만큼이나 긴 안목과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가깝게는 한국문학을 지속적.안정적으로 세계에 소개할 수 있는 기관과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하다. 그러나 멀리 보면 우리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우리 자신의 사고 전환과 실천이야말로 세계 속의 한국 문학을 위한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