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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 증진만이 살 길” 한목소리 내면서도 신경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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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호 04면

13일 오후 일본 요코하마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개최된 제18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막간을 이용, 간 나오토 일본 총리(오른쪽)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회담하고 있다. 지난 9월 영토갈등이 불거진 이후 첫 공식 정상회담이다. [요코하마 로이터=연합뉴스]

제18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13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이틀 일정으로 개막됐다. 요코하마는 150년 전 일본이 미 함선의 포격에 굴복해 처음 문호를 열어준 항구다. 요코하마 정상회의에선 아태 지역의 ‘변화와 행동’을 주제로 지역경제통합, 보호무역 배격, 무역·투자 자유화 문제를 논의한다. 이번 회의에는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이 옮겨왔다. 1, 2, 3 위 경제대국인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자유무역만이 살 길이라고 했지만 G20에서 맞붙었던 환율과 무역 불균형 문제를 둘러싼 신경전은 계속됐다. 회의장인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선 일본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영토 분쟁을 둘러싼 외교전 또한 치열했다. AP통신은 14일 APEC 정상들이 “무역과 투자 부문을 자유화·개방화하는 것이 아태 지역의 공동 번영과 안정을 성취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요코하마 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서울 G20서 요코하마 APEC으로 무대 옮긴 미·중·일·러

일본 “제2의 개국 정신으로 TPP할 것”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APEC 비즈니스 포럼에서 “무역흑자국은 수출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며 “미국 시장에 대한 수출만으로 지속적인 번영이 보장되는 나라는 없다”고 중국을 겨냥했다. 톰 도닐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기자회견에서 “내년 1월 후진타오 주석이 워싱턴을 방문하기 이전에 위안화 개혁 문제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연단에 오른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중국은 환율제도를 개혁하고 있으며 무역균형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있었던 미·중 환율 전쟁은 요코하마로 무대를 옮겨 계속됐다.

13일 성장전략 토론에 이어 14일의 주요 이슈는 역내 경제통합과 무역·투자 자유화 방안이다. 역내 경제통합구상인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역(FTAAP)’ 실현을 위해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한·중·일’, 여기에 인도·호주·뉴질랜드를 합한 ‘아세안+6’ 등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답보 상태에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 어젠다(DDA)’ 협상 가속화도 결의할 예정이다.

일본은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FTA라 일컬어지는 TPP에 대한 참여를 다짐하고 있다. 이날 미·일 정상회담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이 모든 상품의 관세를 철폐하고 완전한 자유무역을 목표로 하는 TPP 협의에 참여하기로 한 결정을 환영한다”고 했다. 앞서 간 나오토 총리는 APEC 비즈니스 포럼에서 TPP 협정과 관련, “제2의 개국을 한다는 결단으로 협상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이 중국의 부상과 한·EU FTA 체결, 한·미 FTA 추진 등에 초조감을 느끼고 있다”며 일거에 이를 만회하는 방편으로 TPP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TPP는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브루나이 등 4개국이 시작한 FTA로 2015년까지 원칙적으로 모든 관세를 철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페루·베트남·말레이시아까지 포함한 9개국이 내년까지 협상을 타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회담장 주변에 ‘중국 제국주의 타도’ 시위
13일 오후 간 총리와 후 주석의 중·일 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성사됐다. 9월 7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일본 순시선과 중국 어선이 충돌하면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된 이후 첫 공식 회담이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정상회담 개최가 불투명했으나 오후 5시 넘어 회담 시간이 발표됐다. 회담 시간은 22분간. 형식은 일본의 요청을 중국이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전략적 호혜관계의 촉진과 경제 협력, 민간교류 확대 방안 등이 논의됐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회담장 기류는 바깥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끝난 뒤 양측은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고 발표문도 내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외교적 파국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회담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일본 관리의 말을 인용, “중국이 희토류 수출규제 문제를 곧 풀 것”이라고 전했지만 구체적 내용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간 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도 이날 대좌했다. 지난 1일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를 방문하면서 갈등이 시작된 이후 첫 정상회담이다. 이에 앞서 일본 언론들은 러·일 외교수장들이 APEC 회의장 한쪽에서 회담을 하고 쿠릴열도 문제로 서로를 자극하지 않은 채 현안을 논의하는 선에서 대립각을 누그려뜨렸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간 총리가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구나시리(러시아명 쿠나시르) 방문에 대해 “우리 국민의 입장과 감정상 수용할 수 없다”고 항의했고,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그곳은 러시아가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영토”라는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이날 회담장인 인터콘티넨털호텔 주변에는 2만1000명의 경찰이 배치된 가운데 반(反)세계화 및 반중국 시위대, 일본 정부의 TPP 참여를 반대하는 농민 등 시위대 수천 명이 몰렸다. 외신들은 ‘우리 영토를 사수하라’ ‘중국 제국주의 타도’라는 팻말이 가장 많았다고 전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14일 간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한다. 이 자리에선 일제 강점기에 일
본이 수탈한 조선왕실의궤 등 문화재급 도서를 한국으로 반환하는 방안을 논의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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