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든 유형의 보호주의 배격 약속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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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철저하게 의제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제행사다. 정상들이 환하게 웃으며 사진 찍는 보통의 국제행사와는 차이가 있다. 서울회의에서는 그동안 재무장·차관 회의와 셰르파(정상 대리인) 회의를 통해 논의해온 주요 의제를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형태의 보호주의를 배격하고 무역자유화를 확대해 나간다는 G20의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고 말했다. 사공일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은 12일 “의제의 60~70%를 차지하는 기존 의제와 한국이 주도한 나머지 의제에서 전반적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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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시정책 공조(프레임워크)=‘강하고 지속가능한 균형성장 협력체계’라는 긴 이름이 붙은 이 의제는 어느 한쪽은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고 다른 쪽은 경상수지 적자에 허덕이는 글로벌 불균형을 고쳐보자는 것이다. 최근 환율 갈등이 불거지면서 핫이슈로 부상했다.

 G20은 정책공조를 위해 국가별로 ‘서울 액션플랜’을 마련했다. G20 회원국이 재정과 금융, 구조개혁, 대외개발, 환율·통화 정책 등 5개 분야에 대한 국가별 정책공약을 이행하기로 다짐하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위안화 절상 압력을 받고 있는 중국은 환율 유연성을 높이고 소비를 늘려 세계경제의 불균형 해소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환율과 관련해선 ▶환율 유연성을 높이고 ▶경쟁적인 평가절하를 자제하고 ▶기축통화 선진국은 과도한 변동성에 유의하는 등 경주에서 합의한 3대 원칙을 재확인했다. 해외에서 자본이 과도하게 유입돼 신흥국 경제가 불안해질 경우 ‘제한된 요건’ 아래 거시건전성 규제를 인정하기로 했다. 제한된 요건이란 ▶외환보유액이 충분하고 ▶변동환율제 아래에서 환율 고평가가 심하며 ▶자본유입 등으로 정책조정 부담이 과도한 경우로 한정했다. 이 경우에도 다른 국가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도록 ‘주의 깊게 설계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외국인 채권투자 규제를 준비 중인 한국으로선 ‘자본통제’라는 삐딱한 외국의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구체적인 수치 목표에 합의하진 못했지만, 경상수지 흑자 또는 적자 규모가 과도한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인 ‘예시적 가이드라인(indicative guidelines)’의 마련 일정과 실행 방안을 마련했다. 내년 상반기 중 가이드라인 진행 경과를 논의하고 내년 중 이 가이드라인에 기반해 첫 번째 상호 평가를 실시하기로 했다.

 ◆국제금융기구 개혁=국제통화기금(IMF) 개혁은 이미 지난달 경주회의에서 산뜻하게 합의된 사항이다. IMF 쿼터는 과다대표국에서 과소대표국(6.2%)과 역동적 신흥개도국(6%)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IMF 설립 이후 최대규모인 100% 쿼터 증액도 합의했다. 현재 이사 수(24석)를 유지하되, 선진 유럽국의 이사직 2석을 없애고 이를 신흥개도국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IMF의 감시 기능도 강화됐다.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부문이 있는 국가에 대한 금융분야 평가를 의무화하고 정례화하기로 했다.

 ◆금융안전망과 금융규제=IMF의 탄력대출제도(FCL) 개선과 예방대출제도(PCL) 도입은 예전에 합의했다. 여기에 세 가지 합의가 추가됐다. 우량국가에 조건 없이 자금을 지원하는 FCL을 동일한 충격에 노출된 여러 국가에 동시다발적으로 제공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또 금융시스템 자체가 흔들리는 데 대응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모색하기로 했다.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M)와 같은 지역안전망과 IMF의 협력을 확대해 위기예방 기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금융규제 개혁 분야에선 은행의 자본·유동성 규제(바젤 III)와 체계적으로 중요한 금융사(SIFI) 규제를 채택했다. 마리오 드라기 금융안정위원회(FSB) 의장은 12일 서울 기자회견에서 일반 은행보다 더 강한 규제를 받을 글로벌 대형 금융사(SIFI)가 20곳을 조금 넘는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 개발 컨센서스=기존의 자금지원 일변도의 개도국 원조방식이 ‘성장친화적’ 방식으로 바뀌는 전환점을 맞으면서 개발의 역사에도 새로운 장이 쓰이게 됐다. G20은 개도국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한국 정부가 발의한 개발의제를 확정하면서 개도국을 위한 다년간의 실행계획을 발표, 개도국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돕는 방법론을 구체화했다.

 이런 개발방식과 구체화 방안은 서울선언의 ‘부속서 1’에 담겨 ‘다 함께 성장을 위한 서울 개발 컨센서스’로 명명됐다. ‘부속서 2’에는 ‘다년간 개발 행동계획’을 담았다.

 G20은 서울 개발 컨센서스에 대해 “개도국, 특히 저소득 국가들과 협력해 이들이 경제성장 잠재력을 최대한 달성·유지하는 역량을 강화하도록 지원하고, 나아가 세계경제의 재균형에 기여하자는 우리의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개발에 관한 원칙은 경제성장 집중, 글로벌 개발 파트너십, 민간부문의 참여 등 6개 원칙으로 정리된다. G20은 이런 원칙들을 통해 개도국들의 경제성장을 도와 개발 격차를 감소시키고, 선진국과 개도국이 동등한 파트너로서 협력해 나가기로 결의했다.

 ◆기타 의제=각국 정상들은 금융 소외계층을 지원하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내용에 대해 진전된 합의를 이뤄냈다. 금융 소외계층이란 국가로 따지면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 기업 규모로 따지면 중소기업을 말한다. 또 만연한 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내용도 정상회의 결과물인 ‘서울선언’에 담았다.

 이들 의제는 비록 환율이나 경상수지 같은 ‘핫이슈’에 가려져 주목을 덜 받았지만, G20이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균형 성장’을 달성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다.

서경호·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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