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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믿음을 갖되 문을 잠그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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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을 참 좋아합니다. 지중해를 끼고 있고, 대서양으로 나가는 관문인 지브롤터 해협에 닿아 있어 예부터 외침이 많았던 곳이지요. 페니키아와 카르타고, 로마, 그리고 반달족과 비잔틴, 사라센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 문명이 교차하는 독특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갖게 됐지요. 안달루시아에서도 코르도바가 특히 저는 좋습니다. 바로 메스키타(Mezquita) 때문이지요. 이 이슬람 사원에 들어섰을 때 코끝이 찡해 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줄지어 늘어선 무지개 모양의 아치 기둥들이 소박함과 기하학적 엄격성에도 불구하고 눈물 나도록 아름다웠던 까닭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지요.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창시자인 아브드 알 라흐만 1세가 처음 만든 이 사원은 후대의 통치자들에 의해 확장을 거듭해 이슬람 세계에서 셋째로 큰 모스크로 발전합니다. 기독교도들이 안달루시아를 재정복한 뒤에도 손상 없이 보존되던 메스키타는 16세기 초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에 의해 성당으로 개조됩니다. 하지만 카를 5세는 완공된 성당을 보자마자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이렇게 말했다지요. “어디에나 있는 건물을 만들기 위해 여기서만 볼 수 있는 건물을 부수고 말았구나.”

 다행히도 메스키타를 완전히 헐고 성당을 다시 지은 건 아니었습니다. 사원의 중심부만 성당으로 개조를 했지요. 처음 있던 기둥 1013개 중 856개가 남았습니다. 가톨릭 성당과 이슬람 사원이 공존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더 콧날이 시렸던 거지요. 종교적 관용 아닙니까. 황제는 가톨릭의 수호자였지만 이슬람 성전에 지나친 적대감이나 종교적 결벽증을 보이지는 않았던 겁니다.

 카를 5세도 그랬지만 원래 종교적 관용의 폭이 더욱 넓었던 쪽은 이슬람이었습니다. “한 손엔 칼, 한 손엔 코란”이란 속설은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이슬람은 거침없이 정복지를 넓혀갔지만 밟은 땅의 이교도들에게 너그러웠습니다. 일정한 세금만 내면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지요. 그래서 이슬람이 지배하는 지역에서는 기독교, 유대교,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등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회가 발전하는 건 자명한 이치겠지요.

 대표적인 곳이 오늘날 이란의 쿠제스탄인 곤데샤푸르였습니다. 곤데샤푸르는 5세기 말 이단으로 낙인찍힌 기독교도들인 네스토리우스파가 쫓겨온 곳입니다. 6세기 초에는 아테네에서 추방된 신플라톤주의자들이 피신했지요. 나중에는 인도, 심지어 중국의 학자들까지 학문적 토론을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자연히 그리스와 페르시아, 아랍, 인도, 중국의 철학과 자연과학, 의학이 융합돼 발전하는 중심지가 됐겠지요. 7세기 초에 새로운 지배자가 된 이슬람은 이 도시를 고스란히 포용했습니다. 곤데샤푸르의 학자들도 이슬람의 종교적 관용에 보답하듯 각종 지식을 아랍어로 옮기는 데 기꺼이 참여했습니다. 이 시대에 이슬람의 학문 수준이 세계 최고였던 까닭이 다른 게 아닙니다.

 종교적 관용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이 땅에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들이 저질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봉은사 땅 밟기’라는 것 말이지요. 일단의 기독교 신자들이 그것도 누구보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젊은 청년들이 봉은사 법당에 들어가 예배를 보고 “이곳은 하나님의 땅”이라고 선포를 했다지요. 대구 동화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물 건너 ‘해외 땅 밟기’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짓입니다. 인류의 문화유산인 바미얀 석불을 파괴한 탈레반의 용렬함과 뭐가 다릅니까. 그것은 폭력이자 광기에 불과한 겁니다. 제국주의적 침략과 다름없지요. 곧 탐욕과 폐쇄적 자기애에서 비롯된 겁니다. 그런 탐욕과 폐쇄성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습니다. 그런 짓을 한 사람들이 타 종교는 물론 자기가 믿는 종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그래섭니다. 볼테르가 “기독교는 어느 종교보다 관용을 가르친 종교였지만 여태까지의 기독교도는 모든 인간 중 가장 관용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고 한탄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어떤 종교를 갖더라도 문을 꼭 닫고 들어가지는 마십시오.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도 깜깜하면 보이지가 않습니다. 믿음을 갖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세요. 그러면 예수의 사랑도, 석가의 대자대비도, 공자의 인(仁)도, 이슬람에서 말하는 귀의(歸依)도 결국 같은 뜻이라는 게 보이고 들릴 겁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j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