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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8> 안동 하회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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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m 높이 부용대에서 내려다본 하회마을 전경. 배산임수의 전형을 보여주는 천하의 명당이다.

당신에게 하회마을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는가. 영국 여왕의 방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해학 어린 웃음의 하회탈? 단아하게 들어앉은 키 작은 한옥 건물? 서애 류성룡? 아니면 한류스타 류시원? 다 맞는 말이다. 하나 전부는 아니다. 하회마을은 걷기 좋은 마을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에도 하회마을은 들어 있다. 굳이 문화부의 권위를 빌리지 않아도 하회마을은 걷기에 좋다. 아니 걸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입구에서부터 차량 출입이 막혀 어쩔 수 없이 걸어 다녀야 한다. 안동시에는 모두 4개 구간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가 있는데 개중에서 마지막 구간인 ‘유교문화의 길’이 하회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아 나온다. 그 유서 깊은 길을, 볕 좋은 늦가을 오후 걸었다. 옛 이야기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 하회마을을 걷기 전에

하회마을은 천하의 명당이다. 낙동강 줄기가 하회마을에 이르러 크게 태극 모양을 그리며 돌아서 나간다. 물길 꺾이는 폭이 워낙 커 부용정 절벽 아래에서 낙동강은 방향을 틀어 북으로 흐른다. 그래서 물돌이동, 하회(河回)다. 낙동강물 안쪽 한반도 모양의 땅에 하회마을이 들어앉았고, 강물 건너편으로는 백두대간에서부터 뻗어 내린 화산 줄기가 버티고 서 있다. 하회마을은 산줄기가 먼저 포위하고, 강줄기가 이어 포위한다. 하여 하회마을의 지형을 말할 때면 배산임수(背山臨水)니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니 하는 풍수지리 용어가 꼭 등장한다.

 하회마을은 사람이 사는 마을이다. 풍산 류씨 일족이 600년 전부터 터를 잡고 살았다. 지금도 150여 가구 중에서 75%가 풍산 류씨다. 그 풍산 류씨 일족에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있었고, 한류스타 류시원도 있다.

 전국엔 아직도 동족마을이 제법 많이 남아있다. 안동에만도 47곳이 있다. 하나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건, 무엇보다 가문의 전통이 여태 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빠뜨린 게 있다. 그 가문에 대한 이야기다. 풍산 류씨 가문은 조선시대에만 대과 급제 21명, 무과 급제 5명, 생원·진사 합격 73명을 기록했다. 하회마을 주민은, 이 모든 공덕을 명당 덕으로 돌린다. 하여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터의 정기를 두 발로 받아들이는 의식이어서다.

2 삼신당 신목 앞에서. 3 병산서원. 4 하회마을은 키 작은 담장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 옛 이야기 안으로 걸어 들어가다

여행은 하회마을 입구 병산서원에서 시작한다. 서애 류성룡이 병산서원에서 유생을 교육했다. 서원의 이름은, 서원이 바라보는 산 이름에서 비롯됐다. 서원 정면에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백사장 뒤로 낙동강이 흐르고 낙동강 뒤로 병산이 버티고 있다.

 병산서원에서 낙동강 따라 난 산길을 걸어 하회마을에 들어간다. 하회마을에 살던 유생이 다녔던 길이라 해서 ‘병산길’이다. 산 중턱 오솔길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하회마을까지 4㎞ 거리로 최근 말끔히 복원됐다.

 병산길에서 내려오니 하회마을이 보인다. 절벽 아래 기와집과 초가집 150여 채가 제각각이다.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들어앉은 방향도 다르다.

 마을에서 꼭 둘러봐야 할 곳이 있다. 풍산 류씨 대종택 양진당과 서애의 종가인 충효당이다. 두 건물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고, 두 건물 모두 종부가 살고 있다. 충효당에 가면 마루에서 대문 밖을 바라봐야 한다. 대문 밖으로 낙동강이 보이고, 그 너머로 가파른 절벽이 보인다. 서애가 이 풍경을 보고 아호를 지었다. 서애(西崖)는 서쪽 벼랑이란 뜻이다.

 마을 복판에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삼신당이다. 하회마을의 아크로폴리스 같은 곳으로, 여기서 하회별신굿탈놀이가 행해졌다. 마을을 빠져나오면 강변을 따라 솔숲이 보인다. 만송정이다. 서애의 형인 겸암 류운룡(1539∼1601)이 조성한 인공 숲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모래바람을 막고 풍수지리에 입각해 마을의 허한 곳을 메우는 구실도 했다.

하회마을에서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넌다. 강 건너 절벽 아래에 서애가 '징비록'을 쓴 옥연정사가 있다.

만송정 아래 백사장에서 나룻배가 다닌다. 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1인 3000원. 배에서 내리면 바로 옥연정사다. 서애가 예서 ‘징비록’을 썼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냈던 서애가 쓴 임진왜란 회고록으로 국보다. 옥연정사는 고택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hahoehouse.co.kr, 017-526-0410.

 옥연정사에서 가파른 절벽을 오르면 부용대다. 64m 위에 있어, 낙동강 크게 휘도는 하회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부용대에서 서쪽으로 절벽을 내려가면 겸암이 머물렀던 겸암정사다. 겸암정 현판은 퇴계 이황이 썼다.

 안동 유교문화의 길은 여기서 끝난다. 쉬엄쉬엄 걷고 기웃거리며 걸었더니 네 시간이 훌쩍 넘었다. 거리는 10㎞ 정도지만, 오솔길도 걷고 강변도 걷고 고샅도 거닐고 배도 타서 재미가 쏠쏠하다. 아니다. 재미는 다음 문제다. 하회마을을 걷는 건, 거룩한 의례를 치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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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기 정보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나와 이정표 따라 10분쯤 달리면 하회마을 입구가 나온다. 하회마을 걷기 정보는 안동하회마을 관리사무소(054-854-3669)와 안동문화지킴이(054-858-1705)에서 얻을 수 있다. 아직 정규 탐방 프로그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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