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개마고원 호랑이와 그놈을 쫓는 포수의 극한 대결, 사나이라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TV 드라마든 영화든, 영상으로 가장 ‘뜨겁게’ 옮겨지는 소설가 중 한 명인 소설가 김탁환(42·사진)씨가 새 장편을 내놨다. 『밀림무정(密林無情)』(1·2권, 다산책방)이다. 1940년대 개마고원과 경성을 배경으로 조선 최고의 명포수 ‘산’과 치명적인 맹수인 백호(白虎) ‘흰머리’간의 목숨 건 7년 동안의 대결을 그렸다.

 낭만과 감상(感傷)을 묘하게 발산하는 1930~40년대식 제목처럼 소설은 아득하면서도 비정한 시공간으로 거침 없이 달려간다. 백색의 원시림, 뼈를 깎는 강추위, 절대 강자와 맞서야 하는 극한의 인간 고독…. 선 굵은 미모의 생물학자 ‘주홍’과 산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도 바탕에 깔린다.

한국 호랑이의 갑작스런 멸종이 자연 도태의 결과라기보다 식민지 경영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해수(害獸)격멸대’까지 꾸려 조직적 토벌에 나선 일제 때문이라는 점을 밝혀 민족 감정도 자극한다. 밀림무정은 산의 아버지이자 흰머리에 희생된 포수 ‘웅’이 구 소련제 모신나강 소총에 철침으로 기입한 총 이름. 산과 흰머리는 불구대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관계다.

 9일 기자간담회 자리, 스토리텔러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이미지의 김씨는 10여 분간 작품과 창작과정을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지도·사진 등이 프로젝터를 통해 스크린 위에 쏘아졌다.

김씨는 “경험적으로 터득한 소설 창작 황금비율에 따라 18개월간 작업했다”고 말했다. 구상·자료조사, 집필, 퇴고 등에 각각 6개월씩 투자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개마고원을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 국회도서관의 북한 자료를 주로 참고했다”고 했다. 퇴고 때는 실제로 야생 호랑이가 서식하는 러시아 라도 지역을 방문해 하루 이틀 시차를 두고 호랑이의 동선을 뒤쫓기도 했다. 또 “호랑이의 생태를 복원하기 위해 서울대 수의학과 이항 교수의 감수를 받았다”고 했다. 가령 배고픈 호랑이가 고라니를 잡아먹는 장면은 자문을 받아 뺐다. 호랑이는 아무리 배고파도 여간해선 고라니를 잡아 먹지 않는다고 해서다.

 김씨는 “집필 기간 중 백호가 서울 시청사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꿈을 꿨다”고 했다. “혹시 이번 소설이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면 반드시 살리고 싶은 장면”이라고 했다. 그다운 발언이다. 그의 소설 중 『나, 황진이』 『불멸의 이순신』 등이 TV 드라마로 이미 만들어졌고 『노서아 가비』 등이 영화로 제작 중이다.

 김씨는 호랑이 사냥을 소재로 한 문화상품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30∼40대 남성들이 조직이나 처해진 틀로부터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도록 만들고 싶은 생각에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