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사람에게 감동 주려면 문화라는 선물 줄 수 있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등장부터 화려했다. 드라이아이스 연무가 깔리고 색색의 조명이 무대를 휘젓더니 강렬한 비트의 드럼 소리가 터졌다.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연미복 같은 푸른 재킷을 입고 넥타이를 맨 채 드럼을 연주하는 남궁연(사진)씨에게로 관객들의 눈길이 확 쏠렸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청중은 어깨를 들썩이더니 이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2분에 걸친 짧은 공연은 ‘포럼’에 어울리지 않는 휘파람과 환호성과 함께 끝났다.

 음악 공연이 포럼에 끼었다면 십중팔구 여흥을 위한 무대인 경우다. 하지만 이날 공식 연사로 초청된 재즈 드러머 겸 문화평론가 남궁씨는 자신의 강연을 ‘재즈 퍼포먼스’로 시작했다. “재즈가 소통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예술 장르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재즈는 원곡을 그대로 연주하는 ‘헤드’와 작곡자의 의도를 거스르지 않는 테두리에서 마음껏 변주하는 솔로, 다시 헤드로 구성된다. 그래서 같은 곡이라도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곡이 되기도 한다. 남궁씨는 “원작자의 아이디어를 존중하면서도 연주자의 재해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소통의 훌륭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즉석 퍼포먼스도 보여 줬다. 그는 청중에게 간단한 리듬의 박수를 계속 쳐 달라고 부탁했다. 도중에 그는 드럼으로 기본 리듬에서 벗어나지 않는 다양한 변주를 연주했다. 드럼의 현란한 리듬에 압도되면 박수소리가 흐트러질 것 같은데 희한하게도 끝까지 박수는 제 리듬을 유지했다.

 이어 그의 주제는 ‘기술과 예술의 소통’으로 넘어갔다. 그는 “기술은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녹음한 음악은 가짜지만 기술이 발전할수록 진짜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진짜의 내용보다 기술 자체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사람에게 감탄만 줄 뿐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기술이 감동을 주려면 아날로그의 옷을 입고, 문화라는 선물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연으로 시작한 그의 강연은 ‘다이얼로그 2.0’으로 이름 붙인 특이한 공연으로 끝을 맺었다. 우선 그는 박자를 세는 메트로놈과 벨소리만으로 기본 멜로디를 만들었다. 이를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씨와 몇 명의 기타리스트에게 주고는 이 반주에 맞춰 나름의 연주를 부탁했다. 국립발레단의 발레리나 김주원씨에겐 춤을 요청했다. 각각의 연주와 공연을 찍은 동영상을 이날 무대에서 한꺼번에 튼 것이다.

 여러 연주와 춤은 묘하게도 별 흐트러짐 없이 하나의 공연으로 모아졌다. 공감의 박수가 터졌다. 그는 “기본 리듬이라는 규칙이 있고, 다른 사람은 이렇게 하지 않을까 하는 배려가 있어야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