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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수사’와 정정당당한 ‘수사’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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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배 사회부문 기자

“이제 뇌물 사건은 하지 말아야겠어….”

 뇌물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지난 4월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검찰의 한 간부는 법원을 비판하며 이같이 말했다.

 사건의 당사자들은 늘 부인하게 마련이고 꼼짝 못할 증거를 내놓기란 점점 힘든데, 도대체 어떻게 수사를 하란 말이냐고 했다. 그는 “검사가 하는 일은 사건을 똑같이 복사해 내는 게 아니다. 여러 정황과 증거에 근거해 법정에 세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사건의 유무죄 여부를 떠나 일응 설득력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최근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사찰 사건을 보면 검찰이 그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싶다. 사건의 본류는 지원관실의 업무에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이 관여했는지 여부다. 검찰은 “이 전 비서관이 민간인 사찰을 포함한 지원관실 업무에 개입한 정황을 찾지 못했다”며 서둘러 수사를 종료했다. 당사자들이 모두 부인하는 데다 증거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기설기 꿰매놓은 이 사건은 결국 ‘대포폰’ 한 방으로 다시 환부를 드러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대포폰을 누가, 왜 나눠줬는가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측이 대포폰을 지급한 사실을 알았지만 청와대와 지원관실 실무자끼리 한 일로 처리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이 문제는 바로 의혹의 핵심에 닿아 있다. 청와대에서 대포폰을 나눠줬다는 사람은 이 전 비서관 밑에서 일하던 직원이고 지원관실에서 대포폰을 받았다는 사람은 이 전 비서관이 메신저로 지원관실에 보냈다는 사람의 부하 직원이다. 이를 하위직 두 사람의 의미 없는 행동인 듯 설명한다고 그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야당이 “재수사를 하든지 특검을 받으라”고 하자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곧바로 “재수사 불가” 입장을 밝혔다. 치욕을 감수하고 특검에 맡기는 한이 있어도 내 손으로는 못하겠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검찰은 수사로 말해야 한다.” 김준규 총장은 7일 검찰 간부 회의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국민이 검찰에 기대하는 것은 어설픈 수사(修辭)가 아닌 정정당당한 수사(搜査)가 아닐까.

전진배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