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일 만에, 105억원 내고 겨우 풀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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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원유 운반선 삼호드림호 선원 24명(한국인 5명)이 피랍 217일 만인 6일 석방돼 13일께 귀국할 예정이라고 외교통상부와 선사(船社)인 삼호해운이 7일 밝혔다. 삼호해운 손용호 대표는 “현지시간 6일 오후 11시쯤 우리 측이 해적에게 석방 금액을 전달했고, 이어 해적들이 내린 뒤 주변 해역에서 감시 중이던 우리 군함 왕건함이 배를 인수했다”고 7일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삼호드림호 선장 김성규씨는 석방 직후 삼호해운에 전화해 “선원 24명 모두 안전하게 풀려났고 건강에 큰 문제가 있는 선원은 없으며 배도 운항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알려왔다고 손 대표는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도 “삼호드림호는 왕건함의 호송 하에 11일께 오만의 살랄라항에 도착할 예정이며, 한국인 선원 5명은 오만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뒤 이르면 12일 중 항공기편으로 출발해 13일 귀국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 이리 늦게 풀려났나=삼호드림호의 억류 기간은 2007년 5월 납치된 우리 원양어선 마부노 1, 2호의 174일간 억류 기록을 뛰어넘는 역대 최장이다. 해적에 지불된 몸값도 105억원(950만 달러)으로 알려졌다. 사상 최고액이다. 지금까지는 올해 1월 풀려나면서 550만∼700만 달러를 낸 그리스의 대형 유조선 마란 센타우루스호가 최고액을 기록했었다.

 삼호드림호의 석방이 유독 힘들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작용했다. 우선 소말리아 해적의 덩치가 ‘글로벌 산업체’ 수준으로 커진 점이다. 외교 소식통은 “해적들의 뒤에는 런던 등 국제보험 중심지와 결탁된 브로커를 비롯한 대규모 투자자들이 존재한다”며 “해적 대표가 우리 선사와 협상 끝에 타협안을 만들었지만 투자자들이 ‘더 받아오라’고 반발해 무산된 게 8월 15일 광복절과 9월 추석을 비롯해 두세 번이 넘는다”고 전했다. 해적의 대형화·조직화는 삼호드림호가 소말리아 연안이 아닌 인도양 먼바다에서 납치된 첫 한국 선박이란 점에서도 확인된다. 해적들은 원양 항해가 가능한 큰 배를 모선(母船)으로 삼고 고속 소형 선박들이 뒤따르는 선단 형태로 먼바다까지 나간 뒤 대형 선박이 발견되면 속도가 빠른 소형 선박을 접근시켜 나포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삼호드림호가 해적들이 납치한 선박 중 가장 큰 규모였고 배에 실린 원유값이 1억7000만 달러나 된 점도 협상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한다. 해적들은 이를 이유로 관행을 뛰어넘는 과도한 액수(2000만 달러 추정)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와 선사 측은 해적들이 한국 선박을 ‘봉’으로 여기고 또다시 납치할 가능성을 우려해 응하지 않았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 정부와 선사는 소말리아 해적이 억류 선원을 해친 전례가 없다는 점을 감안해 억류 선원들의 석방과 우리 선박들의 추가 납치 방지 사이에서 최선책을 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식통은 “협상이 지연되면 해적들도 투자자들의 독촉에 시달리는 등 부담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라며 “이에 따라 양측이 시간 싸움을 벌인 끝에 애초 요구액의 절반 수준에서 타협이 이뤄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역대 최장의 억류 기간과 고액의 몸값 지불은 향후 인도양을 항해하는 우리 선박의 안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소지를 남겼고 해적에 납치된 외국 선박들에도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됐다. 지난달 9일 케냐 연안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또 다른 우리 선박 금미305호도 한 달째 협상에 진전이 없는 상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소말리아의 내정을 안정시켜 해적 창궐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연간 수만 달러에 불과한 유엔 소말리아 해적 퇴치기구 기여금을 수백만 달러 수준으로 올리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찬호·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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