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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와 사실, 원본과 번역 … 『삼국지』를 둘러싼 생각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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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대부분의 소설 『삼국지』에서 조조는 권모술수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실제는 지략과 판단력이 뛰어난 후한 말 삼국시대의 주인공이었다. 사진은 조조와 손권의 대결을 그린 영화 ‘적벽대전’의 한 장면. 사진 가운데 인물이 배우 장풍의가 열연한 조조다. [중앙포토]

승자의 기록인 정사(正史)를 기준으로 할 때 조조는 유비에 앞선다. 실제 역사에서 승자는 조조, 패자는 유비였다. 역사를 보는 대중의 정서는 야사(野史)에 담긴다. 정사의 승자가 야사에선 대접을 잘 못받기도 하는데, 조조의 경우가 딱 그렇다.

 원나라 말기와 명나라 초기인 1300년대 소설가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우리가 보는 『삼국지』의 원본이다. 예술의 세계에서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은 섞이게 마련이다.

소설에서 조조가 ‘영웅’이 아닌 ‘간웅’으로 그려진 것은 단지 허구의 상상력만은 아니다. 그런 측면이 있었다. 조조의 어떤 점을 많이 보는가에 따라 평가가 엇갈린다. 『삼국지』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은 이를 두고 전개된다.

 『삼국지』 원본에 충실하려는 쪽은 원본 그대로, 조조를 보는 시선이 냉랭하다. 황족이라지만 평민과 다름없는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온갖 고난을 딛고 자수성가한 유비야말로, 귀족 출신의 조조·손권과 대비되는 영웅이다.

번역본도 그렇다. 국내에 수많은 『삼국지』 번역이 나왔는데, 해방직후 정음사에서 나와 큰 인기를 끈 소설가 박태원의 첫 번역, 1967년 삼성출판사에서 낸 박종화 번역과 1972년 일조각에서 냈다가 나중에 솔출판사로 옮겨 다시 나온 김구용 번역 등이 원본에 충실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원본을 비틀어보고 싶어하는 것은 또 다른 예술가의 속성이다. ‘삼국지 비틀어 보기’의 원조로는 일본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를 꼽곤 한다. 박태원을 자극해 한국어판 삼국지가 처음 번역되게 한 이가 그였지만, 지나치게 원형을 파괴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삼국지를 새롭게 보려는 이들에게 주목받는 인물은 조조다. 원본에서 저평가된 조조가 재평가된다.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에서처럼 유비가 극단적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1980년대 이후 국내 ‘삼국지 시장’은 이문열의 『평역(評譯) 삼국지』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작가의 시선으로 삼국지를 다시 보겠다는 뜻을 ‘평역’에 담았다. 황석영·장정일 등의 번역도 잇따라 등장하며 ‘삼국지 다시 보기’를 주도하고 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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