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조 목사 “김정일 비위 맞추려 북한 인권 침묵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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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 공작원 출신의 김신조(68·사진) 목사가 한나라당 ‘북한 인권 및 탈북자·납북자 위원회’의 고문으로 내정됐다. 한나라당 북한인권위원장인 이은재 의원의 권유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김 목사는 1968년 1월 북한 특수공작원 30명과 함께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 근방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다가 유일하게 생포됐다. 귀순한 뒤 목사가 된 그는 97년부터 목사로 활동해 왔으며, 지난해까지 경기도 남양주의 성락삼봉교회 담임목사를 맡았다.

 김 목사는 5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치엔 뜻이 없다”며 “북한 인권법을 통과시키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한나라당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일부 당과 정치인은 김정일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냐. 북한 인권과 탈북자 문제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고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는 일부 정치인을 비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나라당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황장엽(전 북한 노동당 비서)씨를 중심으로 탈북자와 관련된 일을 했었는데 황씨가 갑자기 소천(召天·개신교에서 죽음을 이르는 말)하면서 가까운 탈북자들이 도와달라고 제안하더라. 황씨가 북한 인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걸 보고 돌아가셨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

 -북한 인권법 통과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북한 동포에겐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람으로서 대접받는 거다. 이 문제는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 동일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그럴 때 북한 체제에 자극을 줄 수 있다.”

 -김정은 3대 세습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여기서 왈가왈부해야 소용 없다. 김정일이 듣기나 하나. 난 대한민국이 이해가 안 된다. 대한민국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데 남의 집에 대해 논쟁을 해봐야 뭐하나. 북한 문제를 다룰 때는 한목소리가 돼야 하는데 목소리가 찢어져 있다.”

1968년 체포 당시 김신조씨. [중앙포토]

 김 목사는 ‘1·21 사건’ 뒤 기자회견에서 “내래 박정희 멱(목)을 따러 왔수다”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그런 김 목사는 지난달 11일 황장엽 전 비서의 빈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처음 조우했다.

 -빈소에서 박 전 대표와 무슨 대화를 나눴나.

 “그때 처음 만났는데 나를 보더니 두 손을 잡고 ‘김 목사를 여기서 만나게 됐다’며 인사하더라. 박 전 대표에게 ‘내가 강연할 때 박 대통령 얘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왜 김일성이가 박정희를 죽이려고 했는가. 박 대통령은 발전의 기초를 닦았다. 북한이 계속 죽이려 한 대통령은 박정희밖에 없지 않나. 김일성은 남한에 박정희를 살려두면 남한이 북한보다 발전하는 문제가 생길 거란 걸 알았다. 그래서 빨리 없애라고 나를 보냈던 건데 와서 보니까 사실이더라.”

 -탈북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내가 70년 4월 12일 사회에 나올 때 한 푼 받은 게 없다. 하지만 열심히 일해 아들·딸 키웠고, 박사 사위도 얻어 남부럽지 않게 산다. 이북에서 왔으니까 누가 도와주겠지란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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