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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위대한 소통자 레이건·클린턴의 길 따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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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중간선거 패배 후 백악관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모든 게 내 책임”이란 말을 여덟 번이나 반복하면서 국민과의 소통, 공화당과의 초당적 협력을 다짐했다. [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3일 오후 1시(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 좁은 중앙 복도를 통해 입장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대통령 휘장이 새겨진 연단 위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늘 자신만만한 젊은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황금색 커튼과 샹들리에로 장식된 회견장 왼편엔 2008년 대선 승리의 양대 공신 데이비드 액설로드와 데이비드 플러프 백악관 고문이 나란히 서 있었다.

 미국 주요 언론, 한국의 중앙일보 등 세계 각국에서 온 100여 명의 기자들은 긴장 속에 오바마를 주시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제 긴 밤을 보냈습니다.” 오바마는 중간선거 이전의 오바마가 아니었다. 목소리는 낮았고, 얼굴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그는 “미국인들은 크게 좌절했습니다. 더딘 경제 회복, 자녀들에게 희망했던 기회의 부족… 2년 동안 절대다수 미국인들은 삶의 진척을 느끼지 못했고, 어제 (선거를 통해) 그걸 저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받아들입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후 그의 발언은 회한의 반성이자 180도 다른 새 출발의 다짐이었다. 56분의 기자회견 동안 오바마는 여덟 차례나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향후 초당적 국정운영을 약속했다. 그는 “이번 선거는 어느 한 정당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며 “이른 시일 내에 민주·공화 의회 지도부와 마주 앉아 공통분모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어려운 도전을 함께 극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일자리 만들기에 도움만 된다면 공화당 의견도 배척하지 않겠다”며 “앞으로 정책을 선택할 때 (당을 초월해) 대통령으로서 모든 것을 판단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오바마는 국민과의 소통 부족도 시인했다. 그는 “백악관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국민들에게 내가 그들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그게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도전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s)’로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거명하며, 더 많이 백악관 밖으로 나가겠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일부 정책의 궤도 수정 가능성도 내비쳤다. 건강보험, 금융사의 보너스 규제 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일부 반(反)기업적 정서를 표출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경제가 비상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지만, 국민들이 평소 익숙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정부가 간섭한다고 느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추진해 온 ‘배출 총량 거래제’에 대해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며, 대안을 모색해 볼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 가장 큰 업적으로 자부해온 건강보험에 대해서도 “공화당이 시스템을 개선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수정을 제안해 온다면 논의할 수 있다”고 물러섰다.

 오바마는 기자들의 곤혹스러운 질문에도 자세를 낮췄다. 주지사 자리까지 공화당에 빼앗긴 심정이 어떠냐는 질문에 오바마는 다소 목소리를 높이며 “(당연히) 기분이 안 좋죠”라고 말한 뒤 허탈하게 웃었다.

AP통신 기자가 물었다. “결국 지난 2년 동안 미국인들의 진짜 목소리를 대변했던 것은 당신이었는가, 아니면 존 베이너(공화당 소속 차기 하원의장 내정자)였는가?” 뼈아픈 질문에 오바마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경제를 안정시켰다. 일부 진전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걸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분명하게 내 책임이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본지, 오바마 아시아 순방 동행 취재

오바마는 선거 패배를 뒤로하고 5~14일 인도·인도네시아·한국·일본 등 4개국 순방길에 오른다. 11일 서울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양자 정상회담을 한다. 중앙일보는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 전 일정을 동행 취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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