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 전 주택 분양광고 ‘교육·교통’ 강조…요즘과 똑같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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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단은 제1고등보통학교, 북단은 삼청동 공원 인접’ ‘평당 40원에 염가 매각…부근 택지 시세는 평당 55원 이상임’.

 1930년대 주택업자가 한옥을 지어 팔기 위해 만든 분양 홍보물의 문구다. 재미있는 사실은 요즘 아파트 분양과 마찬가지로 교통과 교육 여건을 가장 강조한 것.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싸다는 점을 내세워 수요자를 유인한 점도 오늘날 쓰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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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박물관은 1936년 서울 삼청동 일대에서 분양된 ‘삼화원(三花園)주택’ 분양 홍보물(사진)을 4일 공개했다. 박물관이 지난해 수집한 각종 자료에 딸려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홍보물로 꼽힌다. 박물관 김경도 관장은 “요즘의 분양 광고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단지 배치도, 교통·교육 여건, 주변 기반시설 등 필요한 정보는 모두 담겨 있다”며 “당시 한옥 분양의 형태나 사회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 홍보물은 가로 40㎝, 세로 27㎝로 A4 용지보다 약간 크다. 박물관 김성갑 학예사는 “일반적인 형태의 신문을 반으로 접은 크기로 신문 삽지용으로 제작돼 가정에 배달됐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삼화원 분양 홍보물은 요즘의 주택 광고 전단과 마찬가지로 해당 주택의 교통·교육 등 입지 여건을 가장 강조했다. ‘삼화원주택지분양도’라는 제목 양 옆에 굵은 글씨로 각각 ‘제1고등보통학교(경기고의 전신) 인접’ ‘삼청동 공원 인접’이라고 적혔다.

 이 주택이 가진 장점으로 명문인 제1고보가 가깝다는 것을 앞세운 것이다. 특히 교육 여건 중 ‘단지 안에 유치원이 들어선다’는 점을 강조한 게 눈에 띈다. 분양대행업체인 내외주건 정연식 상무는 “요즘 아파트 분양 때도 단지 내에 학교가 있으면 그것을 앞세운다”며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열의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총독부가 걸어서 5분 거리 ▶전차가 문 앞에 정류 ▶모두 남향 배치 등의 표현도 요즘의 마케팅 방식과 비슷하다. 경성역(서울역)이 가깝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경부·경의·경원선 등 기차 시간표를 게재한 것도 이색적이다.

주택 분양가는 평당 315여원(‘칸당 230원’으로 표기. 칸은 한옥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주택이 몇 칸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계약자가 원하는 대로 지어 팔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집을 짓지 않은 상태의 땅(단독택지)도 팔았다. 크기는 18~373평(59~1230㎡)이고 분양가는 평당 40원. 사업지가 구릉지여서 위쪽은 40원보다 약간 싸게 판 것으로 보인다. 땅값 안내 바로 옆에는 이런 표현도 있다. ‘부근 택지 시세가 평당 55원이라는 점을 양지하라’. 땅값이 주변보다 싸니 얼른 사라는 유인 문구로, 요즘에도 분양업체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주택은 1936년 음력 3월 택지 조성 공사가 끝난 뒤 짓기 시작해 이듬해 입주한 것으로 보인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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