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라이스 방한과 한·미동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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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동아시아를 순방하면서 한국.중국.일본을 방문한다. 현재 한.미 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이번 라이스의 방한을 맞아 한국은 무엇보다 한.미동맹의 소원함을 해소하고 동맹을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라이스 장관에게 한국이 미국의 우호 동맹국이고 미국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은 미국의 대(對)테러전쟁과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정책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미국의 주요 정책인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인권보호의 취지에 공감하는 대표적 아시아 국가이자 미국의 주요 동맹국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여기에다 통일 후까지도 한국은 미국의 우호 동맹국으로 남을 것이라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미국은 현재 한.미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침체, 인도의 부상 등 동북아 및 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추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관계가 소원해진다면 이는 양국 모두에 바람직스럽지 않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세력균형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중국.러시아.일본의 외교 안보상 독자적 행위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국가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상 미.일동맹은 강화되고 일본은 미국에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책에 있어 미.일 간에는 상당한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일본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스가 취임 후 첫 동아시아 순방에 나선 것이다. 이 순방에서 그는 미국의 장기전략의 조율과는 또 달리 당면 현안으로 북한 핵을 놓고 지역동맹국과 주요 행위자들과의 의견조율을 꾀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현재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렇기에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보유를 막을 능력과 의사가 없다면 미국과 일본이 북한에 대해 경제제재를 통한 압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한 제재 결의는 중국에 의해 거부될 수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6자회담은 의미가 없다. 점진적으로 동북아 다자안보 체제를 형성하여 핵과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을 관리하는 기구를 구상해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북한의 핵보유가 한국에 위협이 안 되는가. 핵을 보유한 북한과 한국이 대등하게 교류해 나갈 수 있는가. 물론 예상되는 피해를 고려할 때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할 확률은 낮다. 하지만 북한핵은 방위뿐만 아니라 위협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때문에 한국은 점진적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장기적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정책을 택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장기적으로 주변 강대국들과 선린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외교 전략적 중립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외교 전략적 중립성이란 법적 중립을 선언하지 않고 주변국 모두에 개방된 균형있는 선린외교를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주변 강대국의 상호 견제와 협력 속에서 한반도가 공존.번영한다는 취지다.

개방형 중립성이기 때문에 모든 국가와 균형있는 외교를 전개하자는 것이다. 한.미동맹과 한.중.일 협력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한.미동맹의 강화와 외교 전략적 중립성은 배치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미동맹은 굳건히 유지하지만 동북아 분쟁에 한국군이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은 외교적 중립성을 선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은 상호 보완적이고 모두 중요하다. 한국은 미국과 이런 전략적 인식의 공감대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

김성철 세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