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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올림픽 메달리스트 10여명 연금 등 쾌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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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 지난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대표선수들이 15일 서울시립소년의집.알로이시오초등학교 강당에서 부산 알로이시오 중고 육상.크로스컨트리팀에 성금 600여만원을 전달했다. 아테네올림픽 육상 2관왕인 홍석만 선수(앞줄 왼쪽에서부터 둘째)와 유호상 코치(육상.앞줄 맨 오른쪽) 등이 대표로 참석해 부모가 없거나 생활보호대상자인 학생 선수들을 격려했다. 김성룡 기자

“전 여섯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된 뒤 친척집을 떠돌며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어요.사격을 시작하기 전까진 사실 친구도 거의 없었고요. 여러분도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허명숙·49·아테네장애인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스물두살 때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어요. 자살도 여러 번 시도했는데 친구들 덕분에 살려는 의지를 갖게 됐지요. 그래도 휠체어를 타야 하는 건 너무 창피했는데, 나를 인정하고 나니 남에게 해줄 수 있는 일도 보이더라고요.”(심재용·41·사격 은메달리스트)

15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서울시립소년의집.알로이시오초등학교 강당.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태극전사들이 자신들의 불우했던 과거를 솔직하게 밝히며 불우 청소년들의 마음의 벽을 허물고 있었다.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코치 등이 연금과 상금 등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은 600여만원을 부산 알로이시오 중고교의 크로스컨트리팀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자리였다. 이들 20여 명의 청소년 선수는 부모가 없거나 생활보호대상자들이다.

오전의 공식 행사 때만 해도 어색해 하던 학생들은 특히 그 자신도 생활보호대상자인 허명숙 선수와 심재용 선수 등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듯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냈다.

팀 주장인 이승복(고3)군은 "장애인이라 사실 저희보다 더 어려운 점이 많을 텐데 이렇게 도와주시니 너무 고맙다"면서 "'정말 어려울 때 우리를 생각하며 힘내라'는 말씀을 잊지 않겠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날의 만남은 지난 2월 전국 겨울체육대회에서 은메달을 3개나 따낸 부산 알로이시오 학교 선수들의 열악한 훈련 여건에 대해 알게 된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대표선수들이 "우리도 한 번 좋은 일을 해보자"며 모금을 시작하면서 이뤄졌다.

겨울철에는 크로스컨트리 선수, 나머지 기간에는 육상 선수로 활동하는 이 학생들은 싸구려 장비와 방한복으로 어렵게 선수 생활을 해오고 있다.

아테네 대회 휠체어 육상 2관왕인 홍석만(30) 선수는 2004년 한국체육기자연맹에서 받은 '자황컵' 최우수 기록상 시상금 전액인 200만원을 쾌척했다. 한때 전자제품공 생활로 버는 20여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던 처녀 금메달리스트인 허명숙 선수도 40만원을 보탰다.

또 사격 은메달리스트인 심재용.류호경 선수도 한달치 연금액인 30만원을 내놓는 등 모두 10여 명이 동참했다.

모금을 주도한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소속 박종철(38.역도) 선수는 "그동안 장애인이라고 받기만 했지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풀지 못했다"면서 "금액이 너무 적어 미안하지만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알로이시오학교의 김소피아 교장은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부산에서 살면서 전지훈련도 제대로 못 시켜주는 게 안타까웠는데 큰 보탬이 될 것 같다"며 "사회적 편견과 무관심, 열악한 가정형편이라는 공통적인 어려움 외에도 신체적 장애까지 극복한 선배들의 이야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라고 눈시울을 적셨다.

김정수 기자 <newslady@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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