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민과 매스컴은 오노다의 군인정신에 열광했다. 투항명령서 전달식, 마르코스 당시 필리핀 대통령에 대한 항복 신고, 부동의 자세, 녹슬지 않은 총검…. 눌려있던 일본인의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가 오노다를 통해 분출됐다.
세지마 류조(瀨島龍三)대좌는 45년 7월 만주 관동군 참모로 발령받았다. 종전 뒤 11년간 소련에 억류됐다 56년 8월 돌아왔다. 그는 58년 이토추상사에 입사해 고속 승진을 거듭, 78년 회장이 됐다. 파란만장한 경력 때문에 일본의 소설 '불모지대'의 주인공이 될 정도였다. 그는 회상록에서 "영역과 세력권 확대에 집착한 게 패망의 길로 들어선 결정적 원인"이라고 전쟁을 반성했다. 그는 전쟁을 반성하는 양심적 군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둘 중 누가 오늘 일본의 진짜 정서를 반영할까.
시사점이 있다. 88년 12월 7일 나카사키 시의회의 한 의원이 모토지마 히토시 시장에게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시장은 단호히 "책임있다"고 했다. 후폭풍이 닥쳤다. 자민당 시의원들이 발언철회를 요구했고 당은 그를 고문직에서 내쫓았다. 협박편지도 쇄도했다. 90년 1월 그는 우익단체 간부의 총에 맞았지만 살아났다. 일본에서 '양심적'이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보여주는 대표적 실례로 꼽힌다.
그로부터 17년. '새 역사를 생각하는 모임' 같은 극우파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지방정부는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우긴다. 60년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오노다 아류'의 정신이 판치는 일본에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지 암담할 뿐이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