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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인류학자와 함께 기술 개발 … 포스코는‘시 쓰는 공대생’양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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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의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 인텔 본사에는 상호작용·경험연구소라는 조직이 있다. 소장은 문화인류학자인 제네비브 벨 박사다. 그는 새 반도체 칩과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는 기술자들에게 세계 각지 사람들이 컴퓨터·휴대전화 등 각종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방법·습관에 관한 지식을 제공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IBM·HP에도 인류학자나 민속학자가 일한다. 기술자들이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 사용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HP의 경우 창고와 실험실을 기술직이 아닌 직원들에게도 개방한다. 고가의 장비를 마음껏 활용해 언제든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국내 기업들도 통섭 경영에 적극적이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지난해 3월 취임 직후부터 회사를 ‘통섭형 조직’으로 만들는 데 힘써 왔다. 정 회장은 “철강을 다루는 문학도가, 시 쓰는 공대생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그런 인재를 키울 수 있다면 우리가 직접 양성하자”고 팔을 걷었다. 이후 포스코는 신입사원 채용 전에 일정 규모의 대학 2~3학년생을 선발해 재학 중 문(文)·리(理) 과목을 교차 학습하도록 지원한다. 방학 중에는 제철소에서 철강 공정과 제품에 대한 교육을 한다. 이들 중 신입사원을 뽑아 ‘분야를 넘나들며, 역지사지가 가능한 인재’를 다수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의 정연도 수석연구위원은 이런 시도에 대해 “기술이 발달하고 학문이 세분화하면서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력이 갈수록 더 필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분석적 사고에서 종합적 사상으로, 해석된 지식에서 해석하는 지혜로의 전환이 절실한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생명은 의사와 변호사 자격을 동시에 가진 보상 업무 직원을 채용했다. 갈수록 지능화하고 복잡해지는 보험 사고와 이를 둘러싼 범법행위에 대응하려면 두 분야를 두루 꿰뚫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도 수학·공학 박사학위를 가진 애널리스트,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펀드매니저가 더 이상 화제가 되지 못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강우란 수석연구원은 “‘복잡계’ 이론을 전공한 물리학 박사 출신 연구원도 있다”고 말했다.

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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