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실험 1600번, 복합유산균 콩 요구르트 발명한 금속공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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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김치·우유의 유산균을 두루 활용해 콩 단백질의 80%를 아미노산으로 쪼개는 데 성공한 윤기천 두두원발효㈜ 대표. 이 방식을 적용한 ‘원기효보’라는 제품이 이미 상품화됐다. [김경빈 기자]

콩을 발효시켜 요구르트를 만드는 일은 전 세계 식품학자의 30년 숙원이었다. 그런데 이 일을 엉뚱하게도 금속공학을 전공한 한국인이 해냈다. 두두원발효㈜의 윤기천(60) 대표다.

 그는 40대 후반까지 용접 로봇을 개발하는 회사를 운영했다. 금탑산업훈장까지 받았으니 꽤 일가를 이룬 셈이다. 그러나 이 무렵 갑상선기능항진증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 삶의 궤적을 바꿔 놓았다. 건강을 돕고 노화를 지연시키는 식품에 ‘필’이 꽂혔다. 콩에 관심이 있었는데 남들처럼 그냥 두부·비지나 콩국수 같은 음식을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창조적 파괴’를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윤 대표가 10년간 해낸 일을 이해하려면 간단한 영양학 지식이 필요하다.

 사람의 ‘5대 영양소’ 가운데 으뜸인 단백질은 20여 가지 아미노산의 집합체다. 체내에서 아미노산으로 쪼개져야 피·살·항체·효소가 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바꾸는 일은 단백분해 효소가 맡는다. 젊을 때는 이 효소가 잘 분비되지만 통상 50대 이상이 되면 20, 30대 시절의 3분의 1 정도로 감소한다. 더욱이 암에라도 걸리면 거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효소다.

 윤 대표는 콩 단백질을 아예 쪼개서 아미노산으로 만들어주면 위나 장이 시원찮은 사람이나 노인·암환자라도 쉽게 섭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만드는 데 복합유산균의 힘을 빌려 보기로 했다. 요구르트·김치에 듬뿍 들어있는 유산균은 장에 유익한 세균이다. 그의 최고 작품이라 할 ‘복합유산균’은 김치 유산균 8종과 우유 유산균 4종의 ‘연합군’이다. 이들은 콩 단백질의 80%를 아미노산으로 바꿔 놓았다. 된장·청국장·나토 등 콩 발효식품엔 콩 단백질의 4∼5% 정도가 아미노산의 상태로 존재하는 데 비하면 대단한 성과다.

 미생물학자인 정인범 두두원발효 전무는 “여러 유산균을 섞어 놓으면 이 중 하나가 우점종(세력이 가장 강한 미생물)이 되고 나머지는 죽어버린다는 것이 미생물학의 상식으로 돼 있어 미생물 전공 학자라면 ‘복합유산균’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 역시 “처음엔 세균들이 서로 싸운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고백했다. 무지가 발명의 초석이 된 셈이다.

 지난 10년간 1600여 번의 발효 실험을 거쳐 탄생한 것이 콩 발효 요구르트다. 다른 발효식품과 달리 독특한 냄새가 없다. 상품화(원기효보)까지 완료된 상태. 콩 아미노산을 넣은 오곡효소빵과 아이스크림도 출시됐다. 이들 제품은 방문 판매로만 유통된다.

 윤 대표는 “복합유산균을 이용해 만든 콩 발효식품은 변비·피로를 없애주고 원기를 충전할 뿐 아니라 입덧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발효과정에서 김치 유산균이 생성한 가바(GABA) 성분은 불면증·우울증을 덜어준다”고 말했다. 박현정 충남 천안 이화병원장은 복합유산균으로 만든 콩 발효식품을 임신 6주 된 임신부 50명에게 3주간 복용시켜 봤다. 이 중 46명에서 입덧 예방 효과가 확인됐다고 한다.

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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