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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한·미 FTA를 지켜보는 ‘불편한 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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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인은 답답한(two-by-four) 사람들이다. 그들이 뭔가 하도록 만들려면 각목으로 머리를 쳐야 한다.”

 1992년 10월 월스트리트 저널에 보도된 미국 통상관료의 말이다. 미국이 한국의 금융시장 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하던 때였다. 강만수(당시 재무부 국제금융국장)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적었다.

 “미국은 대화(talking)라고 했지만 우리에겐 강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협상(negotiation)이었다. 회의는 미국 측의 일방적 요구와, 이를 어떻게 부작용 없이 수용하느냐로 수세에 몰린 한국 측의 방어가 부딪히는 격렬하고 어려운 협상이었다. 회의 때마다 미국 측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들어주었다. 우리도 풀기 어려운 금리자유화나 자본거래자유화를 요구할 때는 무력감과 함께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18년 전 얘기를 굳이 꺼낸 건 기시감(旣視感·데자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싸고 미국이 강력하게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점이나, 사실상 재협상을 하면서도 굳이 ‘협의’라는 표현을 고수하고 있는 점도 그때와 비슷하다.

 미국의 불만은 자동차와 쇠고기에 집중돼 있다. 양측은 FTA 협정문에 손대지 않으면서 미국의 불만을 달래주는 ‘창조적인’ 해결책을 모색하 고 있다.

 형식논리로만 따지면 문제될 일은 없다. 자동차 환경규제든, 쇠고기든, 기존 FTA 협정엔 없는 사안이니 협정문을 수정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점(.)이든 콤마(,)든 협정문에 다시 찍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국민의 공감과 정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떤 합의가 나오든, 미국이 요구한 ‘FTA 이행의 전제조건’을 받아주는 모양새는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양국 간에 타결 시점은 이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직전으로 잡아 둔 상태다. 합의가 곧 이뤄질 것이란 뜻이다. 그 내용이 어떻든 이번만큼은 본질과 관련 없는 사안으로 나라가 떠들썩해지진 말아야 한다. 정보의 투명한 공개, 성의 있는 대국민 설득, 근거 없는 비난에 대한 의연한 대처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 FTA는 미국과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내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