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과 주말을!] 칼을 차고 다닌 칸트, 왜 결투는 안 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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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유쾌한 철학자들

프레데릭 파제스 지음, 최경란 옮김

열대림, 272쪽, 1만2000원

원제는 '철학자는 다섯 시에 퇴근한다(외출한다)'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철학자의 삶에서 그들의 일, 그러니까 철학을 빼고 대신 살 냄새 나는 인간적인 면모만 따로 다뤘다는 뜻이리라. 단순한 일화 나열에 그치지 않고 '권위 허물기'라는 하나의 구심점이 보인다. 군대식 어투와 행동거지로 유명한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사실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기상 요원과 우체국 검열원으로 근무했을 뿐이다. 현대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교육사업을 벌이다 적자가 생기자 결혼, 행복 등 대중이 호주머니를 열만한 소재를 다룬 철학서 저술로 눈을 돌렸다.

인생의 페이소스를 잘 보여주는 일화도 적지 않다.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엄청난 재력가로 웰빙에 관심이 많아 '피트니스 트레이너'노릇을 하는 노예를 따로 부렸다. 하지만 정치에 잘못 발을 디뎠다가 자신이 키운 제자인 폭군 네로 황제에게 목숨을 잃었다. 케케묵은 가발에 긴 칼을 차고 다녀 구시대 인물의 상징으로 통하던 임마누엘 칸트는 미국 독립전쟁을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가 이에 격분한 영국인의 결투신청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그의 칼은 결국 장식용에 불과했던 셈이다.

지은이는 프랑스인으로 10년간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다가 1986년부터 시사 주간지 문화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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