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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한국계 작가 '바이런 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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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콧날·입술·손목 안쪽·허벅지 뒷면·종아리·발바닥….’화가는 몸 구석구석을 훑어내린다. 꽤 도발적인 접근이지만 ‘열 두달 된 에멧트’란 제목에 와서 긴장은 풀린다. 25개 네모난 색면이 이룬 황색의 향연은 작가의 한 살배기 아들이 지닌 신체 부위별 색깔이었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 바이런 킴(44)은 자잘하면서 대담하고, 일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인 그림 생각으로 지금 서구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11일부터 5월 8일까지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에서 열리는 '바이런 킴 1990~2004'전은 미국 UC버클리미술관이 기획한 바이런 킴의 첫 미술관 회고전이다. 2007년까지 미국 5개 도시를 순회할 회고전이 작가의 정신적 고향인 한국에 먼저 들렀다.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지난 15년을 꿴 바이런 킴의 그림 세계는 색으로 푼 삶의 기억이라 할 수 있다. 1993년 휘트니비엔날레에 출품해 화제를 모은 '제유법'부터 그는 색이 품고 있는 풍요로운 세계를 제 것으로 만들었다. 다양한 인종 400명을 만나 그 피부색을 하나하나 그려 이어붙인 '제유법'(위 사진)은 단색 추상회화의 전통을 인종차별이란 정치적 논의와 연결시킨 문제작이 됐다. 추상과 재현이라는 오래된 미술계 경계를 무너뜨린 그의 작품은'피부 그림(Skin Painting)'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바이런 킴이 요즈음 몰두하고 있는 작품은 '일요일 그림'연작이다. 말 그대로 매주 일요일 낮에 하늘을 보고 그린 희거나 푸른 단색조 그림이다. 그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일요일마다 계속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 밑에는 그날 흐르던 마음의 정경이 짧은 글에 담겨 있다. 2001년 6월 5일치에는 밝고 아련한 푸른 하늘 아래'함께 산 지 15년 만에 가는 신혼여행처럼, 이렇게 행복해 해도 될 거야'라고 써 있다. 그림 일기인 셈이다.

그는 아마추어 화가를 가리키는'일요 화가'란 말이 마음에 들어 '일요일 그림'이란 제목을 붙였다고 했다. 그림 그리기를 직업이 아닌 여가활동처럼 대할 수 있기를, 그래서 영원히 아마추어 미술가처럼 남을 수 있기를 그는 원하고 있었다. 작고 친밀한 것을 잘 관찰하고 모방해 크고 넓은 것에 던져넣는 그의 태도는 언뜻 진부해보이면서도 신선하다. 오로지 자기 스스로를 파고 드는 힘이 보여주는 평범 속의 위대함이다.

11일 오후 2시 작가 강연회, 26일 오후 2시 큐레이터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관객 참여 프로그램'기억 속의 색깔 만들기'는 자신의 추억을 색으로 표현해보는 자리다. 02-2259-7781.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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