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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근로자 낡은 쉼터에 ‘온기’가득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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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구보건대학 인테리어디자인과 학생들이 27일 대구시 이천동 ‘보현의 집’에서 집수리를 위해 가구를 들어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27일 오전 10시 대구시 남구 이천동 ‘보현의 집’. 쌀쌀한 날씨 속에 남녀 대학생들이 벽지를 뜯어내느라 여념이 없다.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은 긁어냈다. 새 벽지가 잘 붙도록 하기 위해서다. 낡은 장판도 걷어냈다. 방 바닥 곳곳에 시커먼 곰팡이가 피어 있다. 앞서 학생들은 컴퓨터와 책상, 침대 매트리스, 각종 가재도구가 들어 있는 상자 등을 마당으로 들어냈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는 원혜연(19·1년)양은 “이웃을 도우면서 전공도 체험할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대구보건대학 학생과 교수들이 외국인 근로자 쉼터를 고치는 작업에 나섰다. 이국에서 고생하는 이들에게 선사하는 ‘러브하우스’다.

 학생과 교수들이 나선 것은 이곳이 너무 낡았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에 주방의 천장이 내려앉고, 장판과 벽지도 오래돼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함께하는 마음재단’에서 운영하는 보현의 집은 2층 양옥으로 8개 방이 있다. 30여 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생활하는 쉼터다. 산업재해로 몸을 다쳤거나 임금체불로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다. 집 수리는 나인용(48·인테리어디자인과) 교수가 제안했다. 최근 우연히 외국인 근로자를 돕는 바자에 참석했다가 쉼터를 알게 됐다. 후원자가 많지 않아 외국인 근로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 교수는 인테리어디자인과의 학생·교수들과 상의해 집수리 봉사를 벌이기로 했다.

 참가자는 1∼2학년 학생 50명과 교수 7명 등 모두 57명. 10명씩 팀을 짜 오전 8시에 작업을 시작했다. 도배는 전문 도배사 2명이 맡았다. 학생들은 방에 있는 짐을 들어내고 벽지와 장판을 나르는 등 보조 일을 했다. 정강운(23·1년)씨는 “아침을 못 먹었지만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배고픈 줄 모르겠다”며 “외국인 근로자들이 나은 여건에서 생활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도배작업을 지켜보던 스리랑카 출신 근로자 가미니(36)는 “베리 굿”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보현의 집 옆 길가에서는 벽화 그리기가 한창이다. 30여m의 벽돌 담장에 아름다운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학생들은 담벽을 캔버스 삼아 열심히 붓질을 했다. 집수리와 벽화 그리기는 28일 끝난다.

 학생들은 집수리를 위해 27∼28일 열리는 가을축제를 포기했다. 젊음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어려운 이웃을 돕고 경험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봉사 활동을 선택했다. 수리비용 500여만원은 대학에서 지원하는 축제 경비와 교수들의 성금으로 마련했다. 이 학과는 2년 전부터 축제 기간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이일균(57) 학과장은 “인테리어디자이너는 고객에게 편안함과 따뜻함을 선사해야 한다”며 “학생들이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교육 효과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박송묵(47) 보현의 집 이사는 “축제를 포기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학생들을 보니 감사하고 마음 든든하다”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글=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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