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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세습 용인하는 ‘후진국형 진보 노선’포기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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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3대 세습 등 북한의 현실에 대해 침묵하는 진보 진영에 직격탄을 날린 주대환 한국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북한에 대한 대화와 비판의 양립 가능성을 주장했다. [김성룡 기자]

한국 진보세력의 새 길을 사회민주주의 노선에서 찾는 주대환(56)씨. 한국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인 그가 북한 문제에 대한 진보 진영의 애매모호한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북한 정권 ‘3대 세습’이 결정적 계기다. 최근 진보 진영 내에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북한 비판에 미온적인 민노당(민주노동당)이 도마에 올랐다. 주 대표가 볼 때, 이는 민노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세력 전체의 시각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3대 세습이란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면서도, 북한을 비판하면 뭔가 진보의 정신을 위배하는 것인 양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수많은 주민이 굶주리고, 탈북자가 속출하는 상황에, 북한을 너무 압박하면 되려 문제가 악화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이도 있겠지만, 주 대표가 생각하는 사회민주주의는 유럽식 복지국가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북한은 더 이상 이념의 차이를 가르는 기준일 수 없다”고 했다. 사회민주주의연대 이름으로 북한 세습을 명확히 비판한 논평을 냈다. 28일 오후 7시 서울 한국건강연대 강당(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 앞)에선 북한의 3대 세습을 놓고 공개 토론회도 연다.

 -북한 문제와 진보의 혁신이 어떤 관계에 있는가.

 “오랫동안 진보는 북한 문제를 명확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정체성을 오해 받았다. 보수에선 그 약점을 이용해 진보를 몰아 붙였다. 올해 노벨평화상 받은 중국의 류샤오보의 경우를 놓고도, 중국 당국의 입장에 동의하는 이들조차 보인다. 민주주의에 대한 명쾌한 정리를 하지 못한 것이다. 평화를 위해 대북 교류를 하는 것과 북한의 인권·민주주의를 거론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북한 문제를 명확히 할 때 진보-보수 간 생산적 대화도 가능하다.”

 -비판하면서 교류도 할 수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남한에서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집권여당이나 정부의 책임 있는 당국자는 진보·보수 관계없이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안 하는게 좋다. 하지만 지식인이나 시민단체는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통일부 장관 빼고는 다 북한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말할 수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그런 역할분담을 못했다. 지식인의 책임이 크다. 북한 문제는 사실 진보와 보수가 의견 접근이 가장 쉬운 분야다.” 

 -6·25를 거치면서 남·북한 골이 깊게 패이지 않았나.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에, 진보와 보수는 각기 상대를 냉전 세력으로, 친북 세력으로 몰아붙일 수 있었다. 북한문제를 놓고 상대가 이념의 극단에 있다고 했는데, 이제 그러지 말자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알려질 만큼 알려졌다. 진보와 보수가 생각을 달리할 이유가 없다. 통일을 위해선 더욱이 진보와 보수도 협력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탈북자가 2만명이다.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다. 경제도 현재 방식으론 지속불가능하다는 게 판명됐다. 정치적으로도 3대 세습까지 왔으니 어떻게 달리 볼 방법이 없다. 진보도 보수도 의견차이가 클 수 없다는 얘기다. 진보와 보수는 이제 북한 문제로 이념 다툼을 벌일 것이 아니라, 국내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복지정책 같은 사회경제 사안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자. 통일문제는 이제 진보와 보수가 큰 견해차이가 있을 수 없다.”

 -민주노동당보다 진보신당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지 않다. 나는 민주노동당 분당에 반대했다. 지금은 노동당 노선 자체를 포기했다. 민주노동당도 진보신당도 아니다.” 

 -진보 노선의 포기라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후진국형 진보 노선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추구하는 가치는 모두 후진국형이다. 후진국이자 식민지에서 좌파는 아무리 꿈이 높아도 당장 민주주의와 국가독립을 확보해야 하니까 민족민주 운동 밖에 못한다. 우리 진보도 80년대까지 그랬다. 이제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 선진국형 진보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선진국형 진보라면.

 “유럽형 사회민주주의를 선진국형 진보로 본다. 민주주의·시장경제·언론자유 등에서 사회민주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차이가 난다. 사회민주주의는 복지국가를 지향한다. 사회민주주의는 시장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사유재산제도도 긍정한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경제 시스템을 운영할 순 없다고 본다. 개인의 인센티브, 소유권 모두 인정한다. 다만 시장의 실패를 국가와 공공분야가 나서서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시장을 더 활성화하고, 개인의 창의성도 더 발휘할 수 있다.” 

 -민노당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민노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진보 진영 전체, 민주화운동 세력 전체에 이 문제가 깔려 있다. 북한에 대한 뭔가 일말의 미련, 북한이 설마 그럴 것인가라는 생각, 북한을 비판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제적 압력이 없었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날 수 있었겠는가. 국제적 압력이 북한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선 안 된다. 우리 사회에 그런 관성이 있다. 북한이 지금 사태까지 온 데에는 우리의 비판 부족도 한몫 했다고 본다. 책임이 크다.” 

 -진보진영을 약화시키는 발언 아닌가.

 “아니다. 오히려 강화된다.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걸 제대로 정리해야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올드 레프트로는 안 된다. 뉴레프트 곧 사회민주주의로 진화해야 한다. 유럽의 좌파는 이미 1951년 프랑크푸르트선언으로 사회민주주의가 보편화됐다.”

글=배영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주대환 대표=1954년 경남 함안 출생. 1973년 서울대 종교학과 입학 이후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유신시절 민청학련사건 등에 연루돼 세 차례 투옥됐다. 80년대 노동운동 세력의 리더로서 활약하다 옛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로 큰 충격을 받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실패를 인정하고, 92년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전향했다. 유럽의 복지국가식 사회민주주의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사회민주주의연대는 일종의 사상 단체다. 보수 쪽의 ‘한반도선진화재단’ ‘시대정신’ 등에 비교된다. 시대정신의 전신인 자유주의연대가 보수의 혁신을 주창하며 뉴라이트 정신을 내세웠다면, 사회주의연대는 진보의 혁신을 위한 뉴레프트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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