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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열차테러 1년 반테러 국제 정상회의 개막] 정상들 왜 모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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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2004년 3월 11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차 폭탄테러가 발생해 192명이 사망하고 2000여 명이 다쳤다(上). 아래는 당시 테러의 현장이었던 아토차역 플랫폼.

11-M (온세 데 마르소). 3월 11일이란 뜻이다. 지금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곳곳에서 눈에 띄는 문구다. 지난해 마드리드에서 열차 폭탄테러가 발생한 날짜를 의미한다. 당시 혼잡한 출근시간대에 마드리드에서 가장 큰 아토차 역을 비롯, 기차역 세 곳에서 10개의 폭탄이 터졌다. 192명이 사망하고 2000여명이 다쳤다. 미국의 9.11 테러가 일어난 지 정확히 911일 만의 일이다. 알카에다가 저지른 '유럽판 9.11'은 이후 스페인과 유럽을 바꾸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테러리즘과의'대면'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 발생 1주년을 맞아 유럽은 세계 60여개 민주국가 인사들을 모아놓고 테러 대책에 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작된'민주주의.테러.안전에 관한 국제 정상회의'는 유럽식 테러 알기 캠페인이다.

그동안 지구촌 테러와의 전쟁은 9.11을 당한 미국이 주도적 목소리를 내왔다. 해법도 미국의 힘과 논리를 내세운'미국식'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9.11이 일어났다면 유럽에서는 3.11이 일어났다. 알카에다의 입장에서 9.11이 적의 심장에 찌른 칼이라면 3.11은 보급선 차단을 노린 외곽 때리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의는 적어도 테러 대응에 있어 미국의'주변'에 있던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개최 장소도 미국이 아닌 스페인이고 유럽.아프리카.남아메리카 등 다른 대륙 국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행사를 주최한 마드리드 클럽은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수 전 브라질 대통령이 회장을 맡고 있다. 3.11 테러 피해당사국인 스페인은 왕실과 정부가 행사를 후원한다. 참석하는 현직 정상급 인사들 가운데는 노르웨이.알제리.모로코.폴란드.헝가리 등 유럽과 아프리카 국가 인사들이 대거 눈에 띈다.

접근 방식은 유연하고 다양하다. 테러 방지와 관련된 시민사회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토의 주제는 ▶테러리스트의 심리 연구▶문화적 시각에서의 테러리즘 해석▶성공적인 통합으로 가는 이민정책 등 학술적인 내용이 대종을 이룬다. 이 같은 해법은 스페인 정부의 대 테러 대책과 맥이 통한다.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지난해 9월 이슬람 테러리즘 척결 방안으로'문명 간 동맹'회의체를 창설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서방세계와 이슬람 국가 간의 증오.불신을 없애기 위해 유엔에 두 문명 간 정치대화체를 설립,갈등 이슈를 포괄적으로 협의하자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참석했다. 주최 측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참석을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못했다. 미국과 관계가 껄끄러운 스페인에서 회의가 열린다는 게 불참 이유였다는 후문이다. 양국 사이는 지난해 3월 급격히 나빠졌다. 스페인 총선에서 승리한 좌파 정부가 곧 바로 이라크에 파견했던 자국군대를 철수시켰기 때문이다.

마드리드(스페인)=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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