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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경제관이 달라졌다 … 국감 발언 분석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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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10년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 상당수는 배추값 폭등이나 환율 방어, 혹은 4대 강 공사 등 미시적인 현안을 문제 삼았다. 반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재정·조세·복지 등 거시적인 문제를 다뤘다. 박 전 대표가 질의한 내용을 분석한 서울대 강원택 교수는 “집권할 경우 정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평했다.

 ◆“공기업 존치 여부 가리는 평가제 도입해야”=4일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의 첫 번째 국감에서 박 전 대표는 “기금의 경우처럼 ‘공기업 존치 평가’ 제도를 도입해서 3년에 한 번 정도 정책적 임무가 아직도 유효한지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63개 기금은 3년마다 생존 여부를 평가받는 만큼 공기업에 대해서도 주기적으로 경영상태를 평가해 문제가 있는 곳은 민영화하거나 문을 닫게 하자는 취지의 얘기였다. 그의 발언엔 공기업 부채는 나랏빚이며, 현재의 부채 수준(2009년 212조원)이 재정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할 만한 수준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게 측근들의 얘기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재정 건전화를 위해선 세수 기반을 확충하고, 정부 지출을 아껴야 하며, 재정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기업 부채와 같은) ‘암묵적인 국가채무’에 대한 관리까지 포함하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비과세 감면 과다”=재정부에 대한 두 번째 국감(5일) 땐 세제 개편 문제를 언급하면서 정부의 ‘비과세 감면’이 지나치게 많다고 지적했다. “최근 5년간 비과세 감면 제도가 계속 늘었고, 작년에만 25개가 새로 생겼다”며 정부 스스로 비과세 감면 축소 원칙을 어겨가면서 세금을 깎아주고, 세수를 줄이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재정부에 대한 마지막 국감(20일) 때엔 ‘국유재산’ 문제를 집중적으로 따졌다. 그는 “2009년 말 우리나라의 국유재산은 약 297조원인데, 작년에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 나서 유휴 행정재산의 실태를 조사한 후에야 (국유지) 6857필지 중 35%가 용도 폐지 재산이고, 36%가 관리 전환 대상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고 꼬집었다.

 공기업의 효율화, 비과세 감면이나 국유재산 문제에 대한 언급은 ‘복지 재원’을 고민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측근들은 설명한다. 복지 확대의 필요성은 커지는데 재정엔 여유가 없는 만큼 잘못된 행정으로 돈이 낭비되는 ‘사각지대’를 찾아 개혁해야 한다는 게 박 전 대표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는 국감에서 “ 복지예산은 계속 늘어나는데 빈곤하면서도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인가구, 여성가구는 왜 생기느냐”며 “정책 대상을 수백만 명 이상으로 늘리기 이전에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계층에 대해 우선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이런 생각을 측근들은 ‘맞춤형 복지’라고 주장했다. “복지 혜택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가는 것으로 수혜 대상이 주로 포괄적인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는 게 한 측근의 설명이다.

 ◆성장 중시에서 성장과 복지 동시 강조=박 전 대표의 경제관에 대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중 경제인 출신이거나 시민단체 등에 의해 우수 국감 의원으로 선정된 의원, 재정학자·행정학자 등 전문가 20명에게 평가를 의뢰했다. 고려대 이필상 교수는 “성장 일변도의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각종 규제를 ‘풀’며, 법질서를 바로 ‘세’우자는 공약으로 2007년 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제시)에서 성장과 복지를 강조하는 쪽으로 관점이 이동한 게 과거와 다른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줄푸세의 기본 골격은 변하지 않았지만 줄푸세 이후의 바뀐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며 “도덕적 자본주의를 위해선 규제를 다 풀 수 없다는 인식이 그 예”라고 말했다.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인 경원대 홍종학 교수는 “차기 정부에 대한 책임감이 드러나 있지만 개혁적 보수성향의 참모그룹에 좀 편향된 듯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참모그룹은 감세, 규제 완화 등 미국 레이건 시대의 과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박 전 대표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은 인상이다. ‘보편적 복지’와 같은 진보진영의 견해에 대한 이해도 넓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민석·이가영·백일현 기자

박근혜 전 대표의 경제관 추이

2007년 2~6월 대선후보 경선

‘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각종 규제를 ‘풀’며 법질서를 바로 ‘세’우자)

-“반(反)기업 문화를 친(親)기업 문화로, 정부 정책을 기업 중심으로 전환”

-“더 이상 세금을 올리지 않고, 새로운 세금을 만들지 않을 것”

-“투자 가로막는 규제만 풀어도 성장률 2.7%p 올라. 법질서 바로잡으면 매년 1%p 높일 수 있어”

2009년 5월 미국 스탠퍼드대 연설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 ’ 제창

-“주주 이익과 공동체 이익을 조화시켜 더 높은 기업윤리 창달해야”

-“정부는 시장경제 작동 과정에서 문제가 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 경제발전의 최종 목표는 행복 공유. 정부는 공동체에서 소외된 경제적 약자를 보듬어야”

2010년 10월 국정감사

①재정 : “재정 건전화를 위해 세수 기반 확충하고 지출을 아끼며, 재정에 관한 투명한 공개, ‘암묵적인 국가채무’ 관리까지 포함하는 종합 대책 필요”

②복지 : “정책 (수혜) 대상을 수백만 명 늘리기 전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계층에 우선 지원”

③세제 : “사회보험료와 각종 부담금 같은 준조세, 기업의 납세 협력비용 줄여야”

전문가들의 평 (가나다순)

강성철(부산대 행정학과)=“정책의 민주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구체적 대안을 내놨다”

강원택(서울대 정치외교학부)=“집권 가능성 염두에 두고 재정·복지 등에서 대안을 모색한 인상”

김재일(단국대 행정학과)=“국가 부채 및 공기업 부채 등에 대한 견해에서 친기업과 성장에 무게”

김정식(연세대 경제학과)=“경제현안을 총체적으로 잘 파악. 복지에 관심 쏟는 건 바람직”

김창준(한국외대 경제학과)=“성장잠재력 확충, 재분배 기능 강화 등의 입장은 타당해 보인다”

박순애(서울대 행정대학원)=“재정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원론만을 보여줘 경제관 부각시키기엔 한계”

옥동석(인천대 무역학과)=“복지를 강조하면서 재정·조세정책은 기존 시각(작은정부·감세). 어떻게 조화시킬지 궁금”

이필상(전 고려대 총장)=“성장일변도 정책이 아닌 균형성장, 복지성장 강조하는 게 기존 한나라당과 달라”

임병인(충북대 경제학과)=“정보 공개와 복지 혜택으로 선진경제 지향, 재원 확보가 문제될 수도”

임주영(서울시립대 세무학과)=“일찍부터 (진보 쪽의) 분배 주장을 수용하는 인상”

홍종학(경원대 경제학과)=“감세와 규제완화 등 ‘레이건 시대’ 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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